화가 · 16세기
피터르 브뤼헐(대)
Pieter Bruegel the Elder · 1525–1569
알프스를 넘어 로마까지 다녀온 뒤, 들판의 농부와 마을 잔치를 화면 가득 그린 안트베르펜과 브뤼셀의 화가예요.
생애 장면
피터르 브뤼헐(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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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1안트베르펜
피터르 브뤼헐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요. 그의 이름이 처음 또렷하게 나타나는 곳은 1551년 안트베르펜 화가 조합의 명부예요. 이 해에 그는 독립한 화가, 곧 장인으로 이름을 올렸어요. 당시 안트베르펜은 배와 돈과 그림이 모여드는 북유럽의 큰 항구 도시였어요.
- 1553로마
장인이 되자마자 그는 남쪽으로 길을 떠나요. 1553년에는 로마에 있었고, 그곳에서 이름난 세밀화가 줄리오 클로비오와 함께 일했어요. 클로비오가 남긴 재산 목록에는 브뤼헐의 그림이 들어 있어요. 돌아오는 길에 넘은 알프스의 봉우리와 골짜기는 그 뒤로 그의 풍경화 속에 몇 번이고 다시 나타나요.
- 1556안트베르펜
안트베르펜에 돌아온 그는 판화 출판업자 히에로니뮈스 코크의 가게 '네 바람'을 위해 밑그림을 그렸어요. 1556년에 그린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는 이듬해 판화로 찍혀 나왔는데, 판에는 브뤼헐이 아니라 그 무렵 잘 팔리던 옛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이름이 새겨졌어요. 젊은 화가의 그림이 유명한 이름을 빌려 시장에 나간 거예요.
- 1559안트베르펜
이 해 무렵 그는 서명에서 h 를 빼고 'BRVEGEL'이라고 쓰기 시작해요. 같은 해에 속담 수십 개를 한 마을에 몰아넣은 「네덜란드 속담」과, 사순절과 사육제가 광장에서 맞붙는 그림을 그렸어요. 화가 전기 작가 카럴 판 만더르는 그가 친구 한스 프랑커르트와 함께 농부 옷을 입고 시골 결혼식과 장터에 섞여 들어가 사람들을 지켜봤다고 적었어요.
- 1563브뤼셀
브뤼헐은 브뤼셀의 노트르담 드 라 샤펠 교회에서 마이컨 쿠커와 결혼해요. 판 만더르에 따르면 그녀는 브뤼헐의 옛 스승 피터르 쿠커 판 알스트의 딸이에요. 부부는 브뤼셀에 살림을 차렸고, 같은 해 그는 하늘을 향해 아직 올라가고 있는 「바벨탑」을 그렸어요.
- 1565브뤼셀
안트베르펜의 부유한 상인 니콜라스 용엘링크가 집에 걸 그림을 주문해요. 한 해를 여러 때로 나눠 그린 연작이었고, 그 가운데 다섯 점이 오늘까지 남아 있어요. 「곡식 수확」은 그중 늦여름이에요. 나무 밑동에 기대 입을 벌리고 잠든 남자를 보세요. 그 옆에서는 사람들이 빵을 베어 물고 그릇을 비우고, 왼쪽에서는 한 남자가 항아리를 들고 사람 키만큼 자란 밀 사이 좁은 길을 걸어 나와요.
이때 그린 그림곡식 수확 - 1569브뤼셀
브뤼헐은 1569년 브뤼셀에서 세상을 떠나 결혼식을 올렸던 바로 그 교회에 묻혔어요. 두 아들 피터르와 얀은 아직 어린아이였어요. 아버지에게 직접 그림을 배울 수 없었던 두 아들은 자라서 모두 화가가 되었고, 브뤼헐이라는 이름은 몇 대에 걸쳐 화가 집안의 이름이 되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피터르 쿠커 판 알스트판 만더르가 브뤼헐의 스승으로 적은 화가예요. 훗날 장인어른이 되었어요.
- 마이컨 쿠커1563년 브뤼셀에서 결혼한 아내예요.
- 히에로니뮈스 코크안트베르펜의 판화 출판업자로, 브뤼헐의 밑그림을 판화로 찍어 널리 팔았어요.
- 줄리오 클로비오로마에서 브뤼헐과 함께 일한 세밀화가예요.
- 니콜라스 용엘링크1565년 계절 연작을 주문한 안트베르펜의 상인이에요.
- 피터르 브뤼헐(소)와 얀 브뤼헐(대)두 아들로, 아버지를 일찍 잃었지만 둘 다 화가가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