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6세기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Albrecht Altdorfer · 1480–1538
도나우강가의 도시 레겐스부르크에서 시 의원과 건축 책임자로 일하면서, 사람보다 숲과 나무가 주인공인 그림과 판화를 남긴 독일 화가예요.
생애 장면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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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5레겐스부르크
1505년, 레겐스부르크 시의 시민 명부에 새 이름 하나가 올라요.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암베르크에서 온 화가」라고 적혀 있어요. 스물다섯 살 무렵의 젊은 화가가 도나우강가의 이 도시에 자리를 잡은 거예요.
그가 어디서 그림을 배웠는지는 기록이 없어요. 하지만 이 도시는 그가 평생 살고, 일하고, 묻힐 곳이 되었어요.
- 1513레겐스부르크
1513년, 알트도르퍼가 레겐스부르크에 집을 한 채 사요. 몇 해 뒤에는 집을 하나 더 샀어요.
이 무렵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를 위한 일도 맡았어요. 황제의 기도서 여백에 펜 그림을 그렸고, 황제의 업적을 기리는 큰 판화 행렬 작업에도 참여했어요. 레겐스부르크의 화가가 황제의 일을 하게 된 거예요.
- 1519레겐스부르크
1519년 2월, 레겐스부르크 시 의회는 유대인 공동체를 도시에서 쫓아내기로 해요. 의원이던 알트도르퍼는 그 결정을 유대인들에게 알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뽑혔어요. 회당을 두 시간 안에 비우고, 닷새 안에 도시를 떠나라는 통보였어요.
회당은 곧 허물어졌어요. 그 직전 알트도르퍼는 회당 안을 동판 두 장에 새겼어요. 이 판화 맨 위 돌판에는 라틴어로 회당이 1519년 2월 21일에 부서졌다고 새겨져 있어요. 뾰족한 아치 천장 아래로 두 사람이 보여요. 가운데 선 사람은 커다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레겐스부르크 유대교 회당의 현관 - 1520 무렵레겐스부르크
허물어진 회당 자리에 서둘러 나무 예배당이 서요. 그 안에 아름다운 마리아, 곧 「쇠네 마리아」라 불린 오래된 성모 그림이 모셔졌어요. 기적 이야기가 퍼지면서 순례자들이 몰려들었어요.
알트도르퍼는 이 성모 그림을 목판화로 여러 번 새겼어요. 그중에는 여러 색으로 찍은 목판화도 있었어요. 그리고 같은 몇 해 사이, 그는 사람도 이야기도 없이 풍경만 담은 작은 에칭들을 찍었어요. 「가문비나무 두 그루가 있는 풍경」에서는 키 큰 나무가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해요.
이때 그린 그림가문비나무 두 그루가 있는 풍경 - 1528레겐스부르크
레겐스부르크 시가 알트도르퍼를 시장으로 뽑아요. 두 해 전부터 그는 도시의 건축 책임자로 성벽과 건물을 돌보고 있었어요. 시민으로서 오를 수 있는 높은 자리였어요.
그런데 알트도르퍼는 그 자리를 사양했어요.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4세가 맡긴 큰 그림을 그려야 했거든요. 1529년에 완성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투」예요. 수많은 병사가 뒤엉킨 땅 위로, 하늘이 둥글게 휘며 해와 달이 함께 떠 있어요.
- 1535빈
쉰다섯 살 무렵의 알트도르퍼가 도나우강을 따라 빈으로 가요. 레겐스부르크 시를 대신해 빈 궁정을 찾아가는 공식 사절 길이었어요.
여섯 해 전인 1529년에는 오스만 군대가 바로 이 빈을 에워쌌어요. 그 무렵 도시의 건축 책임자였던 알트도르퍼는 레겐스부르크의 성벽을 손보는 일을 맡았어요. 화가로 시작한 사람이 이제 도시의 일을 들고 궁정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는 그만큼 이 도시에서 믿음을 얻고 있었어요.
- 1538레겐스부르크
1538년 2월, 알트도르퍼가 레겐스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나요. 그는 세상을 떠나던 날 유언을 불러 주어 받아 적게 했어요. 그가 직접 남긴 개인 기록으로 지금 전하는 것은 이 유언장뿐이에요. 그는 이 도시의 아우구스티누스회 교회에 묻혔어요.
공작을 위해 그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투」는 지금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에 있어요. 그가 동판에 새긴 회당과 가문비나무는 바다를 건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와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막시밀리안 1세기도서 그림과 판화 작업을 맡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예요.
- 빌헬름 4세「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투」를 주문한 바이에른 공작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