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16세기 ·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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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 한 뿌리에서 두 줄기로 솟은 가문비나무가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그 뒤로 뾰족한 산과 마을, 구불구불한 길이 펼쳐진 풍경 판화예요.
-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화가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가 1521~22년 무렵 에칭으로 찍었어요.
- 이야기 속 주인공 없이 나무와 땅만으로 한 장을 채운, 손바닥만 한 크기의 풍경이에요.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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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큰 나무를 확대해 보세요. 밑동 하나에서 두 줄기가 나란히 하늘로 뻗어 올라가요. 줄기 껍질은 짧은 곡선을 촘촘히 겹쳐 새겼어요. 나무 꼭대기는 종이 위쪽 끝을 뚫고 나가, 끝이 보이지 않아요.
왼쪽으로 뻗은 가지를 확대해 보세요. 가지마다 실 같은 것이 수염처럼 길게 늘어져 있어요. 오래된 숲의 나무에 매달리는 이끼를 닮았어요. 알트도르퍼의 나무는 단정하지 않고, 꼬이고 늘어지고 엉켜 있어요.
왼쪽 위 하늘 구석을 보세요. A 안에 작은 A가 하나 더 들어간 표시가 있어요. 알트도르퍼가 작품에 남긴 이름 머리글자예요. 넓은 하늘 한구석에 작게 서명을 했어요.
왼쪽 아래 마을로 내려가 보세요. 뾰족한 지붕을 얹은 탑과 성벽, 집들이 나무 사이에 모여 있어요. 집과 나무가 모두 같은 가는 선으로 그려져서, 마을이 숲에 묻혀 있는 것처럼 보여요.
가운데 아래 길모퉁이를 확대해 보세요. 지붕을 얹은 가느다란 기둥이 서 있고, 그 곁에 작은 십자가 모양이 보여요. 이 넓은 풍경에서 사람의 흔적은 이렇게 작아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이 판화를 찍던 1520년대 초, 알트도르퍼는 마흔 살 무렵이었어요. 1505년 도나우강가의 도시 레겐스부르크에 시민으로 이름을 올렸고, 1519년 무렵에는 시 의원이 되어 있었어요. 숲을 그리는 화가이면서, 도시의 일을 함께 결정하는 사람이기도 했어요.
그는 일찍부터 숲에 마음을 빼앗긴 화가였어요. 1510년에 그린 「숲 속의 성 게오르기우스」에서는 용과 싸우는 기사가 빽빽한 나뭇잎 속에 거의 묻혀 있어요. 도나우강 유역의 숲과 산을 즐겨 그린 그와 비슷한 화가들을 도나우 화파라고 불러요.
이 풍경 판화 몇 해 전, 도시에는 어두운 일이 있었어요. 1519년 2월 레겐스부르크 시는 유대인 공동체를 도시에서 쫓아내고 회당을 허물었어요. 의원이던 알트도르퍼는 회당이 허물어지기 직전 그 안을 동판 두 장에 새겨 남겼어요. 회당 자리에는 아름다운 마리아를 모신 순례 성당이 섰고, 알트도르퍼는 그 순례를 위한 그림과 목판화도 만들었어요.
그 뒤 몇 해 사이에 알트도르퍼는 이처럼 풍경만 담은 에칭을 여러 점 찍었어요. 에칭은 금속판에 밀랍 같은 막을 바르고 바늘로 그린 뒤, 산에 담가 선을 파내는 판화예요. 성경이나 신화 이야기 없이 풍경 자체가 주제인 판화는 그때 유럽에서 아주 드물었어요.
1526년 그는 도시의 건축 책임자가 되었어요. 1528년에는 시장으로 뽑혔지만, 바이에른 공작이 주문한 큰 그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투」를 그리려고 그 자리를 사양했어요. 알트도르퍼는 1538년 레겐스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다시 가운데 가문비나무를 보세요. 도시 일로 바빴던 사람이 작은 동판 위에서는 화면 한가운데를 나무 한 그루에 통째로 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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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오른쪽 멀리 산 아래, 나무 사이에 숨은 교회 탑을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알트도르퍼는 왜 나무 꼭대기를 종이 밖으로 잘라 버렸을까요?
- 나라면오백 년 전 화가는 사람 없는 숲과 산만으로 그림을 만들었어요. 요즘 우리가 산책이나 캠핑으로 숲을 찾는 이유와 그때의 마음은 얼마나 닮았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