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바위 언덕에 선 나무 몇 그루, 그 뒤로 빈 강물과 큰 산을 먹으로만 그린 산수화예요.
- 원나라 말의 화가 예찬이 1372년, 세상을 뜨기 두 해 전에 그렸어요.
- 그림 오른쪽 위에 화가가 직접 쓴 시와 날짜가 남아 있어서, 어느 날 누구를 찾아가 그렸는지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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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나무숲부터 보세요. 줄기가 가늘고 곧은 나무들이 바짝 붙어 서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요. 나무 아래에도, 강가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예찬의 산수화는 이렇게 사람 없이 텅 빈 풍경으로 이름이 났어요.
위쪽 큰 산을 확대해 보세요. 산 위에 검은 점이 짧은 가로줄처럼 툭툭 찍혀 있어요. 이끼나 작은 풀숲을 나타내는 점이에요. 산의 몸은 먹을 아주 엷게 문질러 회색 안개처럼 쌓아 올렸어요.
맨 아래 바위를 보세요. 붓에 먹을 조금만 묻혀 마른 듯 긁어 그렸어요. 그래서 종이의 결이 붓 자국 사이로 비쳐요. 이 바위에서 진한 먹은 그 위에 찍은 점들뿐이라, 바위가 차분하고 가볍게 보여요.
오른쪽 위 글씨를 보세요. 시 뒤에 신해년 섣달 열사흘에 한 은둔 선비의 집을 찾아가 우산의 숲과 골짜기를 그리고 시를 붙였다고 적었어요. 양력으로 1372년 초예요. 시의 첫 줄은 귀한 손님만을 위해 걸상을 걸어 두었다는 한나라 진번의 옛이야기로 시작해요. 친구가 자신을 그렇게 반겨 주었다는 인사예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372년 1월, 예순여섯 살 무렵의 예찬이 한 친구의 집을 찾아갔어요. 미술관은 그림에 적힌 날짜를 우리 달력으로 1372년 1월 19일로 읽어요. 그날 종이에 담은 산, 우산은 지금 중국 장쑤성 창수에 있어요.
예찬은 근처 우시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젊은 날에는 청비각이라는 서재를 짓고 책과 옛 그림, 골동품을 모아 두며 살았어요. 깨끗함에 남달리 까다로운 사람으로도 이름이 났어요.
원나라 말,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세금이 무거워지자 예찬은 재산을 친척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그리고 작은 배를 타고 태호 둘레의 강과 호수를 떠돌며 스무 해 가까이 살았어요. 그사이 1368년에 원나라가 무너지고 명나라가 섰어요. 이 그림은 새 왕조 아래에서, 그 떠돌이 삶의 끝 무렵에 그린 거예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그림이 은둔하며 사는 삶에 만족한 화가의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해요. 예찬은 1374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뒷날 그는 원나라 말의 네 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혔고, 그의 빈 강과 마른 붓질은 여러 세기 동안 화가들이 따라 그렸어요.
그림은 그 뒤 여러 소장자의 손을 거쳤어요. 20세기에는 뉴욕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수집가 왕지첸 집안의 소장품이었고, 1973년 딜런 재단의 기증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이제 그림 둘레의 붉은 도장들을 다시 보세요. 대부분 650년 동안 이 그림을 거쳐 간 소장자들이 하나씩 찍은 자국이에요. 그 한가운데서 나무 몇 그루는 여전히 아무도 없는 강가에 조용히 서 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그림 속 나무는 모두 몇 그루인지, 줄기를 따라 세어 볼 수 있나요?
- 왜일까예찬은 친구 집을 찾아가 그린 그림에 왜 친구도 자기도 그려 넣지 않았을까요?
- 나라면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배 위에서 살았던 예찬처럼, 나라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