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 15세기

안드레아 만테냐

Andrea Mantegna · 1430–1506

옛 로마의 돌조각을 사랑해 사람과 바위를 조각처럼 단단한 선으로 그렸고, 마흔 해 넘게 만토바 곤차가 가문의 궁정 화가로 일한 파도바 출신 화가예요.

76살았던 해
15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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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만테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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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48파도바

    열일곱 살 안드레아가 스승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벌여요. 상대는 그를 어릴 때 양아들로 들여 그림을 가르친 파도바의 화가 프란체스코 스콰르초네였어요. 소년은 스승의 공방에서 일한 몫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다투었고, 1448년 결국 스콰르초네의 공방에서 벗어났어요.

    홀로 선 그해, 그는 니콜로 피촐로와 함께 파도바 에레미타니 성당 오베타리 예배당의 벽화 일을 맡았어요. 열일곱 살 청년이 도시의 큰 성당 벽에 그림을 그리게 된 거예요.

  2. 1453파도바

    스물두 살 무렵의 만테냐가 결혼해요. 신부 니콜로시아는 베네치아의 이름난 화가 야코포 벨리니의 딸이었어요. 이 결혼으로 그는 조반니 벨리니와 처남 매부 사이가 되었어요. 두 화가는 그 뒤로도 서로의 그림을 오래 눈여겨보았어요.

    「목자들의 경배」가 이 무렵의 그림이에요. 이번엔 오른쪽 끝을 보세요. 파란 모자에 빨간 바지를 입은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작은 바구니를 들고 와요. 그 뒤로 하얀 천을 두른 여인이 따라오고요. 가운데 뒤편에는 흰 길이 언덕을 구불구불 넘어가고, 왼쪽 위 오두막 지붕은 판자가 듬성듬성 빠져 하늘이 보여요.

    이때 그린 그림목자들의 경배
  3. 1457파도바

    오베타리 예배당의 주인 쪽인 임페라트리체 오베타리가 화가를 고소해요. 만테냐가 그린 「성모 승천」 벽화에 사도가 열두 명이 아니라 여덟 명뿐이라는 것이었어요. 감정을 맡은 화가들은 그 좁은 화면에 열두 명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고 보고 만테냐의 편을 들었어요.

    그렇게 지켜 낸 예배당 벽화는 1944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대부분 부서졌어요. 지금은 남은 조각과 옛 사진으로 그 모습을 짐작해요.

  4. 1460만토바

    만토바의 군주 로도비코 곤차가는 1457년부터 만테냐를 궁정 화가로 부르려 했어요. 1458년에는 해마다 주는 봉급에 집과 땔감까지 내걸었어요. 하지만 만테냐는 바로 가지 않았어요. 베로나 산제노 성당의 수도원장 그레고리오 코레르가 맡긴 큰 제단화를 먼저 끝내야 했거든요.

    그는 1460년에야 가족을 데리고 만토바로 옮겼어요. 그 뒤 마흔다섯 해 넘게,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곤차가 가문을 위해 일했어요.

  5. 1474만토바

    만토바 궁전의 한 방에서 10년 가까이 이어진 벽화 일이 끝나요. 만테냐는 벽 위에 날개 달린 아기 천사들이 받쳐 든 현판을 그리고, 이 방을 로도비코와 아내 바르바라에게 바친다는 글과 1474년이라는 날짜를 써넣었어요. 오늘날 사람들이 '신혼의 방'이라고 부르는 방이에요.

    천장 한가운데에는 둥근 구멍이 뚫린 것처럼 하늘을 그렸어요. 그 둘레 난간 너머로 아기 천사들과 여인들이 방 안을 내려다봐요. 바닥에 선 사람은 정말 하늘이 열린 것처럼 고개를 들게 돼요.

  6. 1475만토바

    그해 9월, 판화가 시모네 아르디초니가 로도비코 후작에게 편지를 써요. 자기와 동료 조안 안드레아가 만테냐가 보낸 사람들에게 얻어맞았다는 고소였어요. 시모네는 두 사람이 만테냐의 판화를 베껴 새로 찍어 낸 것을 알고 화가가 화를 냈다고 적었어요. 후작은 그해 10월 두 판화가를 불러들이는 편지를 보냈어요.

    「포도주 통이 있는 바쿠스 축제」가 이 무렵 찍은 판화예요. 가운데 커다란 나무통 위를 보세요. 포도 잎 관을 쓴 남자가 한 손에 단지를 들고, 술에 취해 늘어진 젊은이를 끌어안고 웃어요. 통 아래에서는 아기 둘이 포개져 잠들었고, 오른쪽에서는 또 다른 아기가 통 안을 들여다보려고 기어올라요.

    이때 그린 그림포도주 통이 있는 바쿠스 축제
  7. 1496만토바

    만토바에서 한 유대인 은행가 다니엘레 다 노르사가 집을 샀어요. 그는 집 앞벽에 그려져 있던 성모 그림을 지웠고, 이 일로 도시가 들끓었어요. 후작 프란체스코 곤차가가 자리를 비운 사이였어요. 돌아온 후작은 그 집 자리에 작은 성당을 세우게 하고, 그곳에 걸 그림 값을 은행가에게 물렸어요.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만테냐예요. 1495년 포르노보 싸움에서 프란체스코가 무릎을 꿇고 성모의 보호를 받는 모습을 담은 「승리의 성모」였어요. 이 그림은 1797년 프랑스로 옮겨져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어요.

  8. 1506만토바

    늙은 만테냐는 빚에 쫓기고 있었어요. 1506년 1월, 그는 오래 아껴 온 옛 로마의 흉상, 황후 파우스티나의 얼굴을 후작 부인 이사벨라 데스테에게 팔겠다고 편지에 적었어요. 이사벨라가 여러 번 사고 싶다고 청한 조각이었어요.

    그해 9월 13일, 만테냐는 만토바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산탄드레아 성당에 자기 무덤으로 마련해 둔 예배당에 묻혔어요. 스콰르초네의 공방을 박차고 나온 소년의 단단한 선은, 오늘 이 사이트의 「목자들의 경배」 속 맨발과 바위에, 「포도주 통이 있는 바쿠스 축제」의 잘게 새긴 선 하나하나에 남아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프란체스코 스콰르초네어린 만테냐를 양아들로 들여 가르친 파도바의 화가로, 1448년 법적 다툼 끝에 갈라섰어요.
  • 니콜로시아 벨리니1453년에 결혼한 아내로, 화가 야코포 벨리니의 딸이에요.
  • 조반니 벨리니아내의 형제인 베네치아 화가로, 두 사람은 서로의 그림을 눈여겨본 처남 매부 사이예요.
  • 로도비코 곤차가만테냐를 만토바 궁정 화가로 불러들이고 '신혼의 방' 벽화를 맡긴 만토바의 군주예요.
  • 이사벨라 데스테프란체스코 곤차가의 아내로, 만테냐에게 그림을 맡겼고 그의 마지막 해에 파우스티나 흉상을 사들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