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남은 그림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대신 이 화가의 다른 그림들

화가 · 15세기

마르틴 숀가우어

Martin Schongauer · 1435–1491

알자스의 콜마르에서 금세공인의 아들로 자라, 동판에 새긴 가는 선으로 알프스 너머 젊은 화가들까지 사로잡은 화가이자 판화가예요.

56살았던 해
15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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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숀가우어의 삶,
장면으로 따라가기

  1. 1465라이프치히

    1465년,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학생 명부에 콜마르에서 온 젊은이의 이름이 적혀요. 마르틴 숀가우어예요. 그의 삶에서 날짜까지 확실하게 남은 기록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 이 등록 기록이 그중 하나예요.

    아버지 카스파어는 콜마르에서 일하던 금세공인이었어요. 금속에 가는 선을 새기는 일은 바로 금세공인의 기술이었어요. 그런데 마르틴은 대학에 오래 머물지 않은 것으로 보여요.

  2. 1473콜마르

    1473년, 콜마르의 성 마르탱 성당에 큰 제단화가 놓여요. 장미 덩굴 앞에 앉은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은 그림, 「장미 정원의 성모」예요. 그림 뒷면에 1473이라는 연도가 적혀 있어서, 그의 그림 가운데 날짜가 확실한 단 한 점이 되었어요.

    이 그림은 오백 년 가까이 그 성당에 있었어요. 그러다 1972년 1월, 누군가 그림을 훔쳐 갔어요. 이듬해 그림은 다시 돌아왔고, 지금은 바로 옆 옛 도미니코회 성당에 걸려 있어요.

    그 무렵 그는 동판화로 더 널리 이름을 얻었어요. 「향로」를 보세요. 뾰족한 탑과 천사들이 올라앉은 향로 아래로 사슬이 바닥에 뱀처럼 엉켜 있어요. 아래쪽 가운데에는 M과 S 사이에 작은 십자가를 넣은 그의 머리글자가 보여요.

    이때 그린 그림향로
  3. 1487 무렵피렌체

    알프스 너머 피렌체에서 한 소년이 독일에서 건너온 판화 한 장을 들여다봐요. 숀가우어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이에요. 괴물들이 성인을 공중에서 붙잡고 물어뜯는 장면이죠. 소년의 이름은 미켈란젤로였어요.

    그의 전기를 쓴 바사리와 콘디비는, 미켈란젤로가 이 판화를 물감으로 옮겨 그렸다고 적었어요. 오늘날 미국 포트워스의 킴벨 미술관에 있는 「성 안토니우스의 고통」이 그 그림으로 여겨져요. 숀가우어의 선은 종이에 실려 그곳에 닿았어요.

    커다란 판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도 그렇게 퍼진 그림이에요. 가시관을 쓴 예수가 무거운 십자가 아래 한 손을 땅에 짚고 쓰러졌어요. 그 둘레로 창을 든 병사와 말 탄 사람들이 빽빽하고, 앞쪽에는 개 두 마리가 뛰어다녀요.

    이때 그린 그림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4. 1489브라이자흐

    1489년, 라인강 가의 도시 브라이자흐가 숀가우어를 시민으로 받아들여요. 그는 콜마르를 떠나 이 도시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는 성 슈테판 대성당의 서쪽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성당 복원 보고서는 이 벽화를 1489년과 1490년 여름에 그린 그의 마지막 작업 가운데 하나로 봐요. 펜으로 그린 소묘 「위를 올려다보는 모자 쓴 남자의 흉상」도 이 무렵의 것이에요. 큰 모자를 쓴 남자가 입을 벌리고 눈을 치켜뜬 채 위를 봐요.

    이때 그린 그림위를 올려다보는 모자 쓴 남자의 흉상
  5. 1491브라이자흐

    1491년 2월 2일, 숀가우어가 브라이자흐에서 세상을 떠나요. 대성당 벽의 「최후의 심판」은 그의 마지막 큰 작업 가운데 하나로 남았어요.

    그가 남긴 판화에는 날짜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학자들은 지금도 어떤 판이 먼저인지 선과 솜씨를 비교하며 순서를 맞춰 보고 있어요. 그가 남긴 백여 점의 동판화에는 모두 같은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6. 1492콜마르

    1492년, 스무 살 남짓한 뉘른베르크의 젊은 화가가 콜마르에 도착해요. 알브레히트 뒤러예요. 그는 숀가우어를 만나러 먼 길을 왔어요. 하지만 그를 맞은 것은 이미 세상을 떠난 화가의 형제들이었어요.

    뒤러의 친구 크리스토프 쇼이를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형제들은 이 젊은이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어요. 뒤러는 그 뒤 바젤로 가서 금세공인인 또 다른 형제를 찾아갔어요. 뒤러가 간직한 숀가우어의 소묘 몇 장에는 지금도 뒤러가 손수 적어 넣은 숀가우어의 이름이 남아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카스파어 숀가우어아버지예요. 콜마르에서 일한 금세공인이었어요.
  • 루트비히 숀가우어형제로, 그 역시 화가이자 판화가였어요.
  • 알브레히트 뒤러1492년 숀가우어를 만나러 콜마르에 왔다가 그의 형제들을 만난 젊은 화가예요.
  • 미켈란젤로소년 시절 숀가우어의 판화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을 물감으로 옮겨 그렸다고 전기 작가들이 적은 화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