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oration of the Magi (self-portrait detail)에 그려진 얼굴

화가 · 15세기

산드로 보티첼리

Botticelli · 1444–1510

피렌체의 오니산티 동네에서 나고 그곳에 묻힌 화가로, 메디치 시대의 축제 같은 그림부터 말년의 어두운 신앙의 그림까지 그렸어요.

66살았던 해
15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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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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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58피렌체

    1458년, 가죽을 다루는 장인 마리아노 필리페피가 세금 신고서를 써요. 식구를 한 사람씩 적어 내려가다 아들 산드로 차례가 와요. 아버지는 열세 살 산드로가 글을 배우는 중이고 몸이 약하다고 적었어요. 이 짧은 한 줄이 화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남은 드문 기록이에요.

    가족은 오니산티 성당 가까이에 살았어요. 보티첼리라는 이름은 집안 사람에게 붙은 '작은 술통'이라는 별명에서 왔다고 보는 학자가 많아요.

  2. 1470피렌체

    상인 재판소 메르칸치아가 법정 벽에 걸 그림 일곱 점을 주문해요. 믿음, 소망, 정의 같은 일곱 덕목을 한 사람씩 앉은 여인으로 그리는 일이었고, 이 일은 피에로 델 폴라이우올로가 맡았어요. 그런데 감독을 맡은 토마소 소데리니가 그 가운데 한 점을 스물다섯 살 무렵의 젊은 화가에게 돌렸어요. 그 젊은이가 보티첼리였어요.

    그렇게 태어난 그림이 「용기」예요. 갑옷을 입은 여인이 철퇴를 무릎에 얹고 앉아 있어요. 지금 우피치 미술관에 있고, 날짜가 확인되는 그의 그림 가운데 이른 것이에요. 그는 수도사 화가 필리포 리피에게 그림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3. 1478피렌체

    1478년 4월 26일 일요일, 피렌체 대성당에서 미사가 열리던 중 칼이 번뜩여요. 파치 집안 사람들과 그 편이 메디치 형제를 덮친 거예요. 동생 줄리아노는 목숨을 잃고, 형 로렌초는 다쳤지만 살아남았어요. 음모에 가담한 사람들은 곧 붙잡혀 정부 청사 창문에 매달려 처형됐어요.

    그해 여름 피렌체 정부는 보티첼리에게 낯선 일을 맡겨요. 목매달린 반역자들의 모습을 공공 건물 바깥벽에 그려 모두가 보게 하는 일이었어요. 7월에 그 대가로 금화 40플로린을 주기로 한 결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그 벽그림은 지금 남아 있지 않아요.

  4. 1481로마

    1481년 10월, 로마에서 계약서 한 장에 피렌체와 움브리아 화가들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요.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코시모 로셀리, 피에트로 페루지노예요. 교황 식스토 4세가 새로 지은 예배당의 벽을 이야기 그림 열 점으로 채우는 일이었어요. 훗날 시스티나 예배당이라 불리는 곳이에요.

    보티첼리는 그 가운데 세 장면을 맡았어요. 「그리스도의 유혹」, 「모세의 시련」, 「고라 무리의 벌」이에요. 그는 이듬해인 1482년 피렌체로 돌아왔어요.

  5. 1489피렌체

    1489년 5월, 환전상 베네데토 과르디가 피렌체의 체스텔로 수도원 성당에 가족 예배당을 꾸미며 보티첼리에게 제단화를 맡겨요. 수도원의 후원자 명부에 이 주문이 적혔어요. 그림의 주제는 수태고지였어요. 이 큰 그림은 지금 우피치 미술관에 있어요.

    같은 무렵 보티첼리는 집 안에 둘 만한 작은 「수태고지」도 그렸어요. 가로 31센티미터쯤 되는 판이에요. 왼쪽에서 천사가 무릎을 꿇고, 기둥 너머 오른쪽에서 파란 망토의 마리아가 고개를 숙여요.

    이때 그린 그림수태고지
  6. 1491피렌체

    1491년 1월, 로렌초 데 메디치가 피렌체의 이름난 미술가들을 불러 모아요. 대성당의 정면은 그때까지도 마무리되지 않은 채였고, 여러 사람이 낸 설계안을 두고 의견을 듣는 자리였어요. 보티첼리도 그 자리에 불렸어요. 이날 회의는 결정을 다음으로 미루며 끝났어요.

    이 무렵 그는 세로 34센티미터 남짓한 「성 히에로니무스의 마지막 영성체」를 그렸어요. 분홍빛 제의를 입은 사제가 몸을 굽혀, 무릎 꿇은 늙은 성인에게 성체를 건네요. 갈색 옷의 수도자 둘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요.

    이때 그린 그림성 히에로니무스의 마지막 영성체
  7. 1500피렌체

    1500년이 저물 무렵, 보티첼리는 「신비한 탄생」이라 불리는 그림 맨 위에 그리스어로 몇 줄을 적어요. 자기 이름 알레산드로와, 1500년 끝에 이탈리아가 혼란 속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 들어 있어요. 화가가 직접 날짜를 적어 넣은 그림이라 지금도 자주 이야기돼요.

    그 혼란은 실제였어요. 프랑스 군대가 1494년 이탈리아로 쳐들어왔고 1499년에는 밀라노를 차지했으며, 피렌체 안에서도 다툼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림 위에서는 천사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날아요. 이 그림은 지금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어요.

  8. 1510피렌체

    1504년 1월, 예순 살 무렵의 보티첼리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어디에 세울지 정하는 모임에 불려 나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페루지노, 필리피노 리피도 함께였어요. 그리고 1510년 5월, 그는 세상을 떠나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오니산티 성당에 묻혔어요.

    그 뒤 그의 이름은 오래 희미해졌어요. 19세기 후반 영국의 화가와 비평가들이 그의 그림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이 사이트에 있는 작은 판 두 점은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마리아노 필리페피가죽을 다루던 아버지로, 1458년 세금 신고서에 어린 산드로를 적었어요.
  • 필리포 리피젊은 보티첼리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진 수도사 화가예요.
  • 필리피노 리피필리포 리피의 아들로, 1472년 기록에 보티첼리의 공방에서 일하는 소년으로 나와요.
  • 토마소 소데리니1470년 「용기」를 보티첼리에게 맡기게 한 메르칸치아의 감독이에요.
  • 로렌초 데 메디치파치 음모에서 살아남아 피렌체를 이끈 사람으로, 1491년 대성당 정면 회의를 열었어요.

작품

평예재에 걸린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