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 19세기
귀스타브 모로
Gustave Moreau · 1826–1898
파리의 한 집에서 평생 신화와 성경 속 장면을 보석처럼 촘촘하게 그리고, 그 집을 통째로 미술관으로 남긴 화가예요.
생애 장면
귀스타브 모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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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2파리
1852년, 건축가 아버지 루이 모로와 어머니 폴린이 파리 라로슈푸코 거리 14번지에 집을 사요. 맨 위층은 아들의 작업실이 되었어요. 스물여섯 살 귀스타브는 그해 처음으로 살롱전에 그림을 걸었어요. 성모가 죽은 예수를 안은 「피에타」였어요.
그 몇 해 전 일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국립 미술학교에 들어간 그는 젊은 화가를 로마로 보내 주던 로마상에 1848년과 1849년 두 번 떨어졌고, 1849년에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이 집에 들어온 뒤로 그는 거의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았어요.
- 1858로마
1856년, 모로가 따르던 선배 화가 테오도르 샤세리오가 서른일곱 살에 세상을 떠나요. 이듬해 가을 모로는 이탈리아로 떠나 두 해 가까이 머물며 옛 거장들의 그림을 베껴 그렸어요.
1858년 로마의 빌라 메디치에서, 모로는 여덟 살 아래의 젊은 에드가 드가와 나란히 앉아 같은 남자 누드 모델을 그렸어요. 모로는 그 자리에서 자기 종이에 1858이라고 적었어요. 드가는 오랜 세월이 지나 자기 그림에 1857이라고 적어 넣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적은 모로의 날짜가 더 믿을 만하다고 봐요. 그해 여름 두 사람은 피렌체에서도 함께 지냈어요.
- 1864파리
서른여덟 살의 모로가 살롱전에 높이 2미터가 넘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를 걸어요. 그때까지 그는 거의 이름이 없는 화가였어요. 이 그림이 메달을 받았고, 나폴레옹 3세의 사촌 나폴레옹 공이 곧바로 사 갔어요.
그림 앞에 서 보세요. 푸른 깃털 날개를 단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의 가슴에 매달려 그의 눈을 올려다봐요. 맨 아래 바위 틈에는 먼저 온 사람들의 손과 발, 떨어진 작은 금관이 보여요. 이듬해 살롱에 모로는 「젊은이와 죽음」을 걸었는데, 그림에는 세상을 떠난 샤세리오를 기리는 글이 적혀 있었어요.
이때 그린 그림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 1869파리
그해 살롱에 모로는 「프로메테우스」와 「유피테르와 에우로페」를 냈어요. 「프로메테우스」는 메달을 받았지만, 신문의 평은 매서웠어요.
모로는 그 뒤 일곱 해 동안 살롱에 그림을 보내지 않았어요. 그를 알아보는 몇몇 수집가에게 그림을 팔며, 위층 작업실에서 혼자 그림을 다듬었어요.
- 1876파리
일곱 해 만에 모로가 살롱으로 돌아와요. 손에 든 것은 「헤라클레스와 레르나의 히드라」, 춤추는 살로메를 그린 유화, 그리고 수채화 「환영」이었어요.
모로는 이 그림의 세부마다 밑그림을 수없이 그렸고, 파리 동물원에 가서 살아 있는 뱀을 보고 스케치도 했어요. 왼쪽에 몽둥이와 활을 든 헤라클레스가 조용히 서 있어요. 오른쪽에서는 뱀 머리 여럿이 고개를 쳐들었고, 바닥에는 먼저 쓰러진 사람들이 누워 있어요. 두 바위 사이로는 붉은 해가 지고 있어요. 1884년, 소설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는 소설 「거꾸로」에서 주인공이 모로의 살로메 그림에 빠져드는 장면을 길게 썼어요.
이때 그린 그림헤라클레스와 레르나의 히드라 - 1890파리
1884년, 모로는 평생 함께 살던 어머니를 잃었어요. 나이 든 어머니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서, 모로는 그림마다 무엇을 그렸는지 글로 써서 어머니에게 건넸어요.
1890년 3월 28일에는 오랜 벗 알렉상드린 뒤뢰가 세상을 떠나요.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어요. 모로는 그녀를 기리며 「에우리디케의 무덤 앞의 오르페우스」를 그렸어요.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신화 속 음악가의 이야기예요.
- 1892파리
모로가 국립 미술학교의 교수가 되어요. 한 해 전 세상을 떠난 친구 엘리 들로네의 화실을 이어받은 거예요. 젊은 날 로마상에 떨어지고 학교를 떠났던 그 학교로 선생이 되어 돌아온 셈이에요.
그의 화실에는 앙리 마티스, 조르주 루오, 알베르 마르케가 있었어요. 모로는 제자들에게 자기 화풍을 따라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루오가 로마상에 두 번 떨어지자, 모로는 그에게 학교를 떠나라고 권했어요.
- 1898파리
1898년 4월 18일, 모로는 일흔둘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나요. 그는 유언으로 라로슈푸코 거리의 집과 그 안의 작품 수천 점을 나라에 남겼어요. 미술관으로 열어 달라는 뜻이었어요.
1903년, 집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고, 첫 관장은 제자 루오였어요. 집 밖으로 나간 그림들도 있어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192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헤라클레스와 레르나의 히드라」는 시카고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테오도르 샤세리오모로가 따르던 선배 화가로, 그가 일찍 죽자 모로는 「젊은이와 죽음」을 그려 기렸어요.
- 에드가 드가이탈리아에서 함께 옛 그림을 그리며 가까워진 여덟 살 아래의 화가예요.
- 폴린 모로어머니예요. 모로는 귀가 어두워진 어머니에게 그림 이야기를 글로 써 주었어요.
- 알렉상드린 뒤뢰오랜 벗으로, 1890년 그녀가 죽자 모로는 오르페우스 그림으로 그녀를 기렸어요.
- 조르주 루오미술 학교의 제자로, 스승이 남긴 미술관의 첫 관장이 되었어요.
- 앙리 마티스모로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운 제자예요.
같은 시대를 산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