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Camille Pissarro (1830–1903), French Impressionist painter에 그려진 얼굴

화가 · 19세기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 1830–1903

카리브해의 섬에서 태어나 파리 근처 시골 마을의 언덕과 밭,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평생 그리고, 여덟 번의 인상주의 전시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은 화가예요.

73살았던 해
19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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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피사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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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52카라카스

    1852년, 카리브해의 덴마크령 섬 세인트토머스. 스물두 살 카미유는 아버지의 가게 일을 두고 배에 올라요. 함께 떠난 사람은 덴마크 화가 프리츠 멜뷔였어요. 부모님은 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두 사람은 베네수엘라로 건너갔어요.

    카미유는 그곳 카라카스와 라과이라에서 두 해쯤 머물며 거리와 사람들, 산과 바닷가를 그렸어요. 섬으로 돌아온 뒤, 부모님은 마침내 아들이 파리로 가서 그림을 배우도록 허락했어요.

  2. 1860파리

    파리에 온 피사로는 누구나 돈을 내고 모델을 그릴 수 있던 쉬스 아카데미에 다녔어요. 그곳에서 그는 열 살 아래의 클로드 모네를 만났어요.

    1860년, 파리의 부모님 집에 줄리 벨레라는 젊은 여성이 부엌일을 돕는 하녀로 들어와요. 피사로는 곧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어머니는 이 사이를 반기지 않았어요. 1863년 두 사람 사이에 첫아들 뤼시앵이 태어났지만, 결혼식은 한참 뒤로 미뤄졌어요.

  3. 1868파리

    1868년 봄, 파리 살롱전의 벽에 퐁투아즈의 언덕 그림이 걸려요. 그해 심사위원이던 풍경화가 샤를프랑수아 도비니가 피사로의 그림을 받아들이자고 편을 들었어요. 전시를 본 소설가 에밀 졸라는 비평에서 이 그림을 크게 칭찬했어요.

    「퐁투아즈의 잘레 언덕」을 보세요. 오른쪽 흙길 위에 흰 옷과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어요. 그 뒤로 하얀 집들이 비탈에 앉았고, 언덕 위 밭은 초록과 갈색 띠로 이어져요.

    이때 그린 그림퐁투아즈의 잘레 언덕
  4. 1871런던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이 나자 피사로 가족은 런던 남쪽 노우드로 피해요. 그곳에서 그는 전쟁을 피해 온 파리의 그림상 폴 뒤랑뤼엘을 만났고, 뒤랑뤼엘은 그의 그림을 사 주었어요. 1871년 6월 14일, 피사로와 줄리는 런던 근처 크로이던에서 마침내 결혼했어요.

    그해 가족은 프랑스 루브시엔의 집으로 돌아가요. 프로이센 군인들이 집을 숙소로 썼고, 두고 간 그림들이 무더기로 망가져 있었어요. 십여 년 그린 그림의 많은 수가 그렇게 사라졌어요.

  5. 1874파리

    1874년 4월, 파리 카퓌신 거리에 있던 사진가 나다르의 옛 작업실에서 전시회가 열려요. 살롱전 심사를 거치지 않고 화가들이 직접 연 전시였어요. 이 모임의 규약은 피사로가 퐁투아즈 빵집 조합의 규약을 본떠 짰어요.

    비평가들은 이 화가들을 비웃으며 인상주의자라고 불렀어요. 모임은 그 뒤 1886년까지 여덟 번 전시회를 열었고, 피사로는 여덟 번 모두 그림을 냈어요.

  6. 1881퐁투아즈

    1881년 여름, 퐁투아즈의 피사로 집에 손님들이 찾아와요. 오랜 친구 폴 세잔이 와서 함께 그림을 그렸고, 그때 아직 증권 거래소에서 일하던 폴 고갱도 휴가를 이곳에서 보냈어요. 쉰 살이 넘은 피사로는 젊은 화가들에게 스승 같은 사람이었어요.

    「퐁투아즈의 수확」에서는 비탈밭의 세 농부가 화면 앞으로 크게 나와요. 왼쪽 여인은 파란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를 굽혀 자루를 붙들어요. 가운데 흰 셔츠의 남자는 등을 돌리고 섰고, 오른쪽 여인은 쪼그려 앉아 땅에 손을 뻗어요.

    이때 그린 그림퐁투아즈의 수확
  7. 1892에라니쉬르엡트

    1884년부터 피사로 가족은 노르망디 가까운 마을 에라니의 집을 빌려 살았어요. 1892년, 집주인이 그 집을 팔려고 내놓아요. 피사로가 런던에 가 있는 사이, 줄리는 모네에게 집값으로 1만 5천 프랑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모네는 돈을 빌려주었고, 가족은 그 집을 샀어요.

    그 집 정원과 과수원, 앞의 풀밭은 피사로가 남은 생애 동안 수없이 그린 풍경이 되었어요.

  8. 1903파리

    늘그막의 피사로는 눈병에 시달렸어요. 바람과 먼지를 피하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그는 바깥 대신 창가에 이젤을 세웠어요. 파리와 루앙, 르아브르의 호텔 창문 너머로 다리와 거리, 항구를 연작으로 그렸어요.

    1903년 11월 13일, 피사로는 파리에서 일흔세 살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그린 잘레 언덕과 수확하는 사람들은 이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줄리 벨레부모님 집의 하녀로 만나 1871년 런던 근처 크로이던에서 결혼한 아내예요.
  • 프리츠 멜뷔1852년 함께 베네수엘라로 떠난 덴마크 화가예요.
  • 폴 세잔퐁투아즈에서 자주 함께 그린 친구로, 훗날 전시 도록에 자신을 피사로의 제자라고 적었어요.
  • 클로드 모네쉬스 아카데미에서 만난 동료로, 에라니 집을 살 돈을 빌려주었어요.
  • 폴 뒤랑뤼엘런던에서 만나 그의 그림을 사 준 그림상이에요.
  • 뤼시앵 피사로1863년에 태어난 맏아들로, 아버지처럼 화가가 되었어요.

작품

평예재에 걸린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