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의 그림 해설
- 비틀린 고목들이 선 물가 언덕, 그 뒤의 누각, 다리를 건너는 나그네들, 멀리 낮게 누운 산을 먹으로 그렸어요.
- 북송의 궁정 화가 곽희가 1080년 무렵 비단에 먹과 옅은 색으로 그린 두루마리예요.
- 산을 바라보는 거리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화가가, 그 가운데 평평하게 멀어지는 풍경을 직접 보여 주는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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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물가의 작은 다리를 확대해 보세요. 어른 두 사람이 저마다 작은 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다리를 건너고 있어요. 오른쪽 사람은 긴 지팡이를 짚었어요. 손톱만 한 크기인데도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또렷해요.
고목 사이로 누각이 보여요. 아래층 위에 지붕 얹은 정자가 한 층 더 올라앉았고, 난간과 기둥이 가는 먹선으로 그어져 있어요. 다리를 건넌 사람들이 쉬어 갈 곳처럼 보여요.
나뭇가지 끝을 보세요. 잔가지가 아래로 휘며 끝이 갈고리처럼 구부러져요. 게의 집게발을 닮았다고 해서 해조묘라고 부르는, 곽희와 그를 따른 화가들이 즐겨 쓴 가지 그리는 법이에요.
아래쪽 바위를 확대해 보세요. 먹을 물에 풀어 번지듯 칠해서, 바위가 구름 덩어리처럼 둥글고 부드러워요. 가장자리만 짙은 먹으로 눌러 주어 덩어리가 앞으로 불룩 솟아 보여요.
오른쪽 위의 큰 붉은 도장을 보세요. 乾隆御覽之寶, 곧 건륭 황제가 보았다는 도장이에요. 그림 곳곳에 찍힌 도장들은 이 두루마리가 수백 년 동안 여러 소장가의 손을 거쳤다는 흔적이에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080년 무렵, 북송의 수도 개봉. 곽희는 이미 궁정에서 이름난 화가였어요. 신종 황제가 그의 그림을 무척 아껴서, 궁궐의 병풍과 벽을 곽희의 산수가 채웠어요. 지금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에 있는 그의 「조춘도」에는 1072년이라는 해가 적혀 있어요.
미술관은 이 두루마리를 곽희가 늘그막에 그린 그림으로 봐요. 그리고 은퇴를 앞둔 동료 관리에게 주려고 그렸을 것이라고 설명해요. 산을 보는 거리를 셋으로 나눈 그의 생각은 아들 곽사가 엮은 『임천고치』에 전해요.
그런데 곽희의 그림이 늘 대접받은 것은 아니에요. 1085년 신종이 세상을 떠난 뒤 궁정의 취향이 바뀌었어요. 송나라의 저술가 등춘은 『화계』에, 곽희의 그림들이 창고로 치워져 탁자를 닦는 걸레로까지 쓰였다고 적어 두었어요.
그래도 이 두루마리는 살아남았어요. 원나라의 서화가 조맹부는 그림 뒤에 시를 붙여, 먹으로 산과 물을 담기 어렵다는 것과 벼슬에 매여 숨어 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노래했어요. 그림은 가로 1미터 남짓이지만, 앞뒤로 표구와 글이 이어 붙어 두루마리 전체는 8미터가 넘어요. 1981년 존 M. 크로퍼드 주니어가 이 두루마리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어요.
다시 다리 위 사람들을 보세요. 벼슬에서 물러나는 친구에게 건넨 그림이라면, 이들이 향하는 고목 사이 누각은 그 친구가 앞으로 쉬어 갈 자리처럼 보이기도 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다리 위의 네 사람 가운데 누가 짐을 들고 누가 앞장서는지, 그리고 이들이 어디로 가는 것 같은지 찾아볼 수 있나요?
- 왜일까곽희는 왜 화려한 색 대신 먹의 짙고 옅음만으로 이 풍경을 그렸을까요?
- 나라면여러분이 매일 지나는 길에도 걸어 들어가 머물고 싶은 풍경이 있나요? 그곳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