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의 이야기
어두운 감옥 방을 나서자 눈앞이 환해져요. 그리고 거대한 파도가 우리 쪽으로 덮쳐 와요. 레오가 한 걸음 물러서며 노트를 꼭 쥐어요. 놀라지 마세요. 이 그림은 생각보다 작아요. 가로 37.9센티미터, 공책을 펼친 정도 크기의 종이에 찍은 목판화예요.
먼저 파도 꼭대기를 보세요. 흰 물거품 끝이 잘게 갈라져 갈고리처럼 휘어 있어요. 손가락을 구부린 손이 아래의 배를 움켜쥐려는 것 같아요. 짙은 파랑과 옅은 파랑, 그리고 종이의 바탕색이 겹겹이 쌓여 파도의 두께를 만들어요.
이제 파도 아래로 눈을 내려 볼까요. 길쭉한 배가 세 척 보여요. 오른쪽 아래 배를 가까이 보면 사람들이 머리를 숙인 채 배 위에 바짝 엎드려 있어요. 위를 올려다보는 얼굴은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가운데쯤, 파도와 파도 사이 골짜기를 보세요. 작은 흰 산이 하나 앉아 있어요. 후지산이에요. 저렇게 작은데도 이 그림의 주인공이에요. 왼쪽 위 네모 칸에 冨嶽三十六景, 후지산 서른여섯 경치라는 시리즈 이름이 적혀 있거든요.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1830년 무렵, 일흔 살쯤에 이 시리즈를 냈어요. 목판화는 그림을 나무판에 새기고 색마다 판을 따로 만들어 종이에 한 장씩 찍어요. 그래서 같은 그림이 세상에 여러 장 남아 있어요. 이 한 장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어요. 이런 판화는 에도의 가게에서 팔리던 그림이었어요.
레오가 은필로 파도의 곡선을 따라 그리다가 말해요. 이 파도는 정말로 바다를 건너갔어요. 몇십 년 뒤 일본 판화가 유럽에 퍼지자, 모네는 판화를 모았고 반 고흐는 일본 판화를 보고 따라 그렸어요. 바다 건너 화가들의 눈을 바꿔 놓은 거예요.
다음 방에도 바다가 기다려요. 하지만 이번에는 또렷한 선이 하나도 없어요. 안개와 물보라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몸부림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