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깡마른 젊은 남자가 옷을 벗은 채 한쪽 팔을 꺾어 올리고, 커다란 눈으로 정면을 노려보는 자화상이에요.
- 빈의 화가 에곤 실레가 1911년, 스무 살 남짓에 수채 물감과 연필, 불투명한 과슈로 종이에 그렸어요.
- 자기 몸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앙상한 뼈와 얼룩진 살결 그대로 드러낸, 실레다운 자화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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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확대해 보세요. 눈 밑에 붉은 선을 그어 눈이 퀭하게 튀어나와 보여요. 한쪽 눈썹은 치켜올라가고 입은 반쯤 벌어져 있어요. 물감이 번지고 겹친 자리마다 살이 멍든 것처럼 거뭇거뭇해요.
머리카락으로 올라가 보세요. 짙은 갈색과 붉은색이 뭉쳐 있고, 물감이 고였다 마른 자리에 작은 거품 같은 무늬가 남았어요. 그 위로 연필 선 하나가 머리 위를 가볍게 지나가요. 빗질하지 않은 듯 위로 뻗친 머리가 얼굴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요.
옆으로 뻗은 팔 위쪽 가장자리를 보세요. 몸의 윤곽을 따라 하얀 과슈가 두껍게 칠해져 있어요. 연필로 그은 윤곽선 바로 바깥을 흰 띠가 감싸고 있어서, 몸이 누런 종이에서 떠올라 빛나는 것처럼 보여요.
꺾어 내린 팔 끝, 손이 있어야 할 자리로 가 보세요. 붉은 물감은 손목 근처에서 흐려지고, 그다음은 연필 선 하나만 길게 이어져요. 실레는 손을 끝까지 그리지 않았어요. 다 그린 몸과 비어 있는 손이 한 화면에 함께 있어요.
왼쪽 아래를 보세요. E.S.라는 머리글자와 1911이라는 숫자가 연필로 적혀 있어요. 에곤 실레가 이 그림에 남긴 서명과 연도예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911년, 에곤 실레는 스무 살 남짓이었어요. 빈 미술 아카데미를 박차고 나온 지 2년 만에, 그해 빈의 미트케 화랑에서 처음으로 혼자만의 전시를 열었어요. 열일곱 살 때 만난 구스타프 클림트, 그리고 비평가 아르투어 뢰슬러가 일찍부터 그를 알아보고 밀어 주었어요.
그해 봄, 그는 연인 발리 노이질과 함께 어머니의 고향인 작은 도시 크루마우로 옮겨 갔어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 그리고 동네 어린 소녀들을 모델로 세우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두 사람은 몇 달 만에 그곳을 떠나 빈 서쪽의 작은 마을 노이렝바흐로 갔어요.
이 무렵 실레는 옷을 벗은 자기 몸을 비틀고 꺾은 자화상을 여러 점 남겼어요. 이 그림 속 자세를 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고 풀이해요.
노이렝바흐의 평온도 오래가지 않았어요. 이듬해 봄 그는 체포되어 24일 동안 갇혀 지냈어요. 아이들이 드나드는 집에 야한 그림을 두었다는 죄였고, 재판에서는 그의 그림 한 장이 불태워졌어요. 그리고 1918년 가을,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 에디트가 먼저 떠나고 사흘 뒤 실레도 스물여덟 살로 세상을 떠났어요.
이 그림은 미국 잡지 다이얼의 편집인 스코필드 세이어의 수집품이었어요. 그는 1921년부터 1923년 사이 런던·파리·베를린·빈에서 실레와 클림트, 피카소 등의 작품을 빠르게 모았어요. 1982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이 그림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왔어요.
이제 그 커다란 눈을 다시 보세요. 마을에서 밀려나고 이듬해엔 감옥에 갇힐 스무 살 남짓의 화가가, 거울 속 자기를 이렇게 똑바로 노려보고 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몸을 감싼 하얀 띠가 끊긴 곳은 어디인지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실레는 왜 자기 얼굴과 몸을 보기 좋게 다듬지 않고 앙상하고 얼룩진 모습으로 그렸을까요?
- 나라면요즘 우리는 사진 앱으로 얼굴과 몸을 매끈하게 고쳐 올리곤 해요. 실레처럼 고치지 않은 자기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려면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