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하나가 돌로 된 창턱에 팔을 걸치고 몸을 내밀었어요. 입에는 가느다란 대롱을 물었어요. 대롱 끝에서 동그란 방울이 부풀어 오르고 있어요. 청년은 숨을 아주 조금씩 내쉬는 중이에요. 조금만 세게 불어도 방울은 터져 버리니까요.
그림은 보통 오래 남기려고 그려요. 그런데 장시메옹 샤르댕은 몇 초 뒤면 사라질 것을 그림 한가운데에 세워 두었어요. 왜 하필 비눗방울이었을까요?
먼저 방울을 크게 볼게요.
방울은 거의 청년의 머리만 해요. 테두리는 머리카락처럼 가는 선 하나예요. 그 선을 따라 푸른빛과 누런빛이 살짝 번져요. 안쪽은 비어 있어요. 그래서 방울 뒤로 지나가는 창턱 모서리가 그대로 비쳐 보여요.
방울 위쪽 왼편과 아래쪽 오른편에 하얀 점이 하나씩 찍혀 있어요. 빛이 비친 자리예요. 샤르댕은 방울 안을 비워 두고, 가는 선 하나와 하얀 점 두 개만 얹었어요. 우리 눈이 나머지를 채워서 둥근 방울을 봐요.
그럼 방울은 어디서 왔을까요? 창턱 왼쪽 끝으로 가 보세요.
유리잔에 뿌옇고 누르스름한 물이 담겨 있어요. 비눗물이에요. 거품이 이는 듯 물감이 자글자글하게 얹혀 있어요. 잔에는 대롱이 하나 더 꽂혀 있어요. 방울이 터지면 청년은 다시 이 잔에 대롱을 담그겠지요.
샤르댕은 원래 정물 화가로 이름을 알렸어요. 1728년 프랑스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에 들어갈 때도 동물과 과일을 그리는 화가로 받아들여졌어요. 잔, 항아리, 과일처럼 가만히 있는 물건을 오래 들여다보던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1730년대 초부터 사람이 나오는 장면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 그림이 그 무렵의 작품이에요.
이 장면에도 정물 화가의 눈이 남아 있어요. 유리잔은 꼭 정물화 한 점 같아요. 창턱의 돌은 거칠게 문질렀고, 청년의 갈색 웃옷 소매 윗부분에는 솔기가 벌어진 듯 하얀 천이 비죽 나와 있어요. 모두 단단하고 무거운 것들이에요. 그 사이에 가장 가볍고 약한 것 하나가 매달려 있어요.
이제 오른쪽 창턱 너머를 보세요.
모자를 쓴 꼬마가 창턱 위로 눈만 내밀고 있어요. 코끝이 발그레해요. 입은 창턱에 가려 보이지 않아요. 꼬마의 눈은 방울 쪽을 향해 있어요. 숨죽이고 기다리는 얼굴이에요. 터질까, 날아갈까.
유럽 그림에는 비눗방울이 자주 나와요. 특히 네덜란드 화가들은 비눗방울을 인생이 짧고 덧없다는 뜻으로 그리곤 했어요. 사람은 비눗방울 같다는 옛 라틴어 말도 있었어요. 샤르댕의 그림에도 그런 생각이 겹쳐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요.
다만 샤르댕은 해골이나 꺼진 촛불 같은 무거운 물건을 옆에 놓지 않았어요. 그림에 있는 것은 한 청년과 한 아이, 그리고 둘이 함께 지켜보는 방울 하나뿐이에요. 교훈보다는 숨을 참는 순간 그 자체가 먼저 보여요.
샤르댕은 이 장면을 여러 번 그렸어요. 비슷한 「비눗방울」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말고도 미국의 다른 미술관들에 남아 있어요. 몇 초면 사라질 장면을, 화가는 몇 번이고 다시 붙잡은 셈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