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숨은 이야기 ·

그림과 사람이 나란히 서 있던 날

벨라스케스가 로마에서 그린 이 남자는 그의 작업실에서 일하던 노예였어요. 그리고 훗날 화가가 됐어요.

디에고 벨라스케스, 후안 데 파레하, 1650년

후안 데 파레하

Juan de Pareja (ca. 1608–1670)

디에고 벨라스케스1650년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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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가 그린 이 남자, 사실은 노예였어요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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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노예였어요.

교황을 그리기 전에 손을 풀려고 먼저 그렸대요.

친구들은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어요.

그해 11월, 풀어 주는 문서에 서명했어요.

자유? 4년 더 일하면요.

파레하는 그 뒤 스스로 화가가 됐어요.

자기 그림 왼쪽 끝에, 서명 적은 종이를 들고 섰어요.

그의 얼굴을, 왕과 교황을 그릴 때와 같은 솜씨로.

당신의 하루 뒤에서 일하는, 얼굴 모르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 「후안 데 파레하」 디에고 벨라스케스 · 평예재 숨은 이야기에서 크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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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카락이 구름처럼 부풀어 있고, 이마에 빛이 한 줄기 떨어져요. 남자는 어깨를 비스듬히 돌린 채 눈만은 우리 쪽을 똑바로 봐요. 웃지도 않고, 시선을 내리깔지도 않아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왕도 귀족도 아니에요. 이름은 후안 데 파레하. 그림을 그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업실에서 일하던 사람이고, 법으로는 벨라스케스가 소유한 노예였어요.

1650년, 두 사람은 로마에 있었어요.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였고, 왕실 소장품으로 쓸 미술품을 구하러 이탈리아에 와 있었지요. 로마에서는 더 큰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화였어요.

18세기 초에 벨라스케스의 전기를 쓴 스페인 화가 안토니오 팔로미노는, 벨라스케스가 교황을 그리기 전에 손을 풀려고 먼저 파레하를 그렸다고 적었어요. 연습이었다고요? 그렇다면 연습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한번 보세요.

얼굴을 크게 볼게요. 눈 밑의 그늘, 콧등에 맺힌 빛, 도톰한 입술 위의 수염. 붓 자국은 많지 않은데 살갗의 온기가 느껴져요. 두 눈동자에 작은 빛이 하나씩 찍혀 있어서, 그림 밖의 우리와 눈이 마주쳐요.

이번에는 하얀 깃이에요. 멀리서 보면 섬세한 레이스 같지요. 가까이 다가가면 흰색과 회색 물감을 거칠게 문지른 자국이에요. 가장자리는 붓을 툭툭 끌어 올려 해진 천처럼 만들었고, 물감 사이로 캔버스의 올이 그대로 비쳐요.

팔로미노가 남긴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벨라스케스가 완성된 그림을 파레하에게 들려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친구들이 그림 속 남자와 눈앞의 남자를 번갈아 보며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다는 거예요. 그해 3월, 이 초상화는 로마 판테온에서 열린 전시에 걸렸어요.

오른쪽 아래, 망토 자락 위에 올린 손을 찾아보세요. 손가락 마디는 몇 번의 붓질뿐이에요. 얼굴만큼 다듬지 않은 것 같지만, 한 걸음 물러서면 손이 천을 지그시 누르는 무게가 보여요.

그런데 같은 해 로마에서는 그림 밖에서도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 1650년 11월, 벨라스케스는 파레하를 노예 신분에서 풀어 주는 문서에 서명했어요. 조건이 붙어 있었어요. 4년을 더 일한 뒤에야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었지요.

파레하는 그 뒤 스스로 화가가 됐어요. 1661년에 그린 「성 마태오를 부르심」(지금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는 그림 왼쪽 끝에 파레하 자신이 서 있어요. 손에는 자기 서명을 적은 종이 한 장을 들고요. 그림의 모델이었던 사람이, 이번에는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 이름을 남긴 거예요.

이 초상화는 1971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왔어요. 미술관이 붙인 제목에는 파레하가 산 해가 함께 적혀 있어요. 1608년 무렵부터 1670년까지. 그림 한 장 너머에 한 사람의 긴 삶이 있었다는 표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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