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벽에 걸린 그림은 늘 한쪽 면만 보여 줘요. 그런데 이 작은 캔버스는 뒤집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와요. 노란 밀짚모자를 쓴 남자와 등을 맞대고, 감자 껍질을 깎는 사람이 앉아 있거든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적힌 이 그림의 정식 이름부터 그래요.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뒤에 괄호가 붙고, 그 안에 「감자 깎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하나 더 적혀 있어요. 천 한 장의 앞뒤에 그림 두 점. 빈센트 반 고흐는 왜 이렇게 했을까요?
먼저 우리 쪽을 보고 있는 얼굴부터 볼까요. 크기는 세로 40.6센티미터, 가로 31.8센티미터예요. 공책을 펼친 정도의 작은 캔버스예요. 반 고흐는 1887년 파리에서 이 그림을 그렸어요. 그는 1886년 동생 테오가 사는 파리로 와서 2년 가까이 머물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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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연한 파랑, 보랏빛 물감이 짧게 톡톡 찍혀 있어요. 그 사이사이로 거친 천의 올이 그대로 보여요. 물감으로 빈틈없이 덮지 않고, 천의 누런 빛을 바탕색처럼 남겨 둔 거예요.
이 짧은 붓질은 파리에서 생긴 변화예요. 반 고흐는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밝은 색을 만났고, 쇠라와 시냐크처럼 색을 작은 점과 터치로 나누어 찍는 화가들의 그림도 보았어요. 네덜란드 시절의 어둡고 흙빛 도는 그림이 여기서 눈에 띄게 밝아졌어요.
이번에는 눈을 보세요.
눈동자에 초록과 노랑과 파랑이 겹쳐 있어요. 눈 밑과 콧등에는 노란 선이, 눈가에는 주황과 초록 선이 나란히 그어져 있어요. 얼굴을 살색 한 가지로 칠하지 않고, 서로 다른 색의 짧은 선을 엮어서 살결을 만들었어요.
그럼 캔버스 다른 면의 「감자 깎는 사람」은 언제 그린 걸까요? 반 고흐가 파리에 오기 전, 네덜란드 뉘넌에서 농부들을 그리던 시절의 그림이에요. 그 무렵 그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준비하면서 농촌 사람들의 얼굴과 손을 수없이 그렸어요.
파리의 반 고흐는 넉넉하지 않았어요.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생활은 테오의 도움에 기대고 있었어요. 모델을 부를 돈이 모자랐던 그는 거울 속 자기 얼굴을 자주 그렸어요. 파리에서 그린 자화상만 스무 점이 넘어요.
천 한 장도 아쉬운 형편이었으니, 이미 그린 그림의 다른 면을 다시 쓰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거예요. 시골의 감자 깎는 사람과 파리의 새 색으로 그린 화가의 얼굴이, 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대고 있는 셈이에요.
마지막으로 모자 챙을 보세요.
노란 짚 사이로 초록 선이 섞여 있어요. 밀짚의 결을 노랑 하나로 칠하지 않고, 노랑과 초록의 줄무늬로 엮었어요. 뉘넌 시절의 어두운 색을 떠올리며 다시 보면, 이 노랑이 한층 환하게 느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