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옷을 입은 꼬마가 우리를 똑바로 보고 서 있어요. 레이스 깃은 하얗게 부풀었고, 허리에는 은빛 띠를 둘렀어요. 한 손에 쥔 끈 끝에는 까치 한 마리가 묶여 있어요. 여기까지는 귀여운 아이 초상화예요.
그런데 그림 왼쪽 아래의 그늘을 오래 보고 있으면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와요. 어둠 속에서 동그란 눈이 빛나고 있거든요. 하나, 둘, 셋. 고양이 세 마리가 한곳을 보고 있어요.
이 소년의 이름은 그림 맨 아래에 큰 글자로 적혀 있어요. 마누엘 오소리오 만리케 데 수니가. 스페인 귀족 알타미라 백작 집안의 아들이에요. 글줄 끝에는 그가 1784년에 태어났다는 말도 있어요. 프란시스코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린 때는 1787년에서 1788년 무렵이니, 소년은 서너 살이었어요.
먼저 까치의 부리를 크게 보세요.
까치가 하얀 쪽지 한 장을 물고 있어요. 쪽지에는 흘림 글씨로 고야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화가의 명함이에요. 고야는 구석에 서명을 작게 넣는 대신, 그림 속 새의 부리에 자기 이름을 물려 두었어요.
이제 그 까치를 지켜보는 쪽으로 눈을 옮겨 보세요.
왼쪽에는 흰 털에 검정과 주황 얼룩이 있는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어요. 오른쪽에는 회색 줄무늬 고양이가 앉아 있어요.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요. 그 뒤 어둠 속에는 몸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검은 고양이가 있어요. 노란 눈 두 개만 떠 있어요.
고양이들의 눈이 향한 곳은 바닥의 까치예요. 끈에 묶인 새는 멀리 날아갈 수 없어요. 그런데 소년은 그걸 모르는 듯 우리 쪽만 보고 있어요. 밝은 빨강 옷 바로 옆에 고양이들이 앉은 짙은 어둠이 붙어 있어요.
오른쪽에도 새가 있어요.
초록 새장 안에 작은 새들이 모여 있어요. 얼굴은 빨갛고, 날개에는 노란 줄이 보여요. 철창 덕분에 고양이는 이 새들에게 닿을 수 없어요. 대신 새들도 밖으로 날아갈 수 없어요.
옛 유럽 그림에서 새는 자주 사람의 영혼을 뜻했어요. 그래서 이 그림을 어린 시절이 얼마나 연약한지 보여 주는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 많아요. 다만 이것은 그림을 본 사람들의 해석이에요. 그래도 고양이들의 눈은 이 초상화를 그냥 귀엽게만 두지 않아요.
고야는 같은 무렵 소년의 어머니와 여동생도 그렸어요. 이 사이트에 있는 「알타미라 백작 부인과 딸 마리아 아구스티나」가 그 그림이에요. 두 그림은 지금 같은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어요.
미술관이 붙인 제목에는 소년의 이름 뒤에 1784–1792라는 숫자가 있어요. 마누엘은 1792년, 열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림이 그려지고 몇 해 뒤의 일이에요. 고야는 알 수 없었던 일이지만, 오늘 이 그림 앞에 선 우리는 알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