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16세기 · 안토니오 다 코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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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세례자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자
Virgin and Child with the Young Saint John the Baptist
안토니오 다 코레조1515년 무렵나무판에 유채64.2 × 50.2 cm
한눈에
- 붉은 옷에 푸른 망토를 두른 성모가 무릎 위의 아기 예수를 안고, 왼쪽에서 다가온 어린 세례자 요한을 손으로 감싸는 장면이에요.
- 북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다 코레조가 젊은 시절인 1515년 무렵 나무판에 유화로 그렸어요.
- 세 인물이 삼각형을 이루는 짜임과 부드러운 윤곽, 서로를 향한 다정한 몸짓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어요.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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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위 번호를 누르면 그 해설로, 확대 그림을 누르면 그림 전체에서 그 자리로 가요.
성모의 얼굴을 확대해 보세요. 눈꺼풀은 반쯤 내려앉았고, 입꼬리는 아주 살짝 올라가 있어요. 얼굴과 머리카락 사이에 딱딱한 선이 없어 그림자가 연기처럼 번져요. 시카고 미술관은 이 수수께끼 같은 미소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해요.
아기 예수의 오른손을 보세요. 검지와 가운뎃손가락을 세우고 나머지는 접었어요. 그리스도 그림에서 흔히 보이는 축복의 손짓이에요. 통통한 손목에는 아기다운 살 주름이 접혀 있어요.
왼쪽 아래의 요한으로 내려가 보세요. 곱슬머리 아이가 고개를 들어 아기 예수를 올려다보고, 어깨 너머로 가느다란 막대가 비스듬히 지나가요. 허리에는 털가죽을 둘렀어요. 털옷은 광야에서 지낸 어른 요한을 알려 주는 표시예요.
왼쪽 위 덩굴 시렁을 확대해 보세요. 나무 막대를 엇갈려 엮은 격자 사이로 짙은 초록 잎과 둥근 열매가 매달려 있어요. 열매에는 빛이 한쪽에서 비쳐 동그란 부피가 살아나요.
오른쪽 먼 풍경으로 눈을 옮겨 보세요. 푸른 안개 속에 산줄기가 솟고, 그 아래 숲 사이로 뾰족한 탑을 단 건물들이 희미하게 보여요. 미술관은 이런 풍경에서 북유럽 그림의 영향을 읽어 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515년 무렵, 코레조는 스물여섯 살 안팎의 젊은 화가였어요. 그의 이름은 태어난 북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코레조에서 왔어요. 로마나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큰 미술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었어요.
그래도 그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부지런히 배웠어요. 시카고 미술관은 이 그림에서 세 사람을 삼각형으로 묶는 짜임은 라파엘로를, 부드러운 윤곽과 미소는 레오나르도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해요. 그 위에 서로를 향한 다정함은 코레조만의 것이라고 덧붙여요.
이 무렵 그는 고향에서 큰일을 맡았어요. 1514년 코레조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을 위해 커다란 제단화를 주문받은 거예요. 그 그림은 지금 독일 드레스덴에 있어요. 그에 비해 이 그림은 품에 안길 만큼 작아요. 시카고 미술관은 이 그림을 가까이 두고 기도하던 그림이라고 소개해요.
몇 해 뒤 그는 이웃 도시 파르마로 옮겨 가 평생의 일을 했어요. 1526년부터 1530년까지 파르마 대성당의 둥근 천장에 하늘로 올라가는 성모를 그렸어요. 미술관은 이 작은 그림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그 빛나는 천장화를 미리 보여 준다고 말해요. 코레조는 1534년 마흔다섯 살 무렵 세상을 떠났어요.
그림은 먼 길을 돌았어요. 1815년 파리에서 나온 도록에, 독일 카를스루에 주재 프랑스 외교관을 지낸 마시아스의 소장품으로 실렸어요. 그리고 1965년 시카고 미술관에 들어왔어요. 이듬해 미국 시사 잡지 타임과 여러 미술 잡지가 시카고에 온 이 코레조를 소개했어요.
다시 왼쪽 아래 성모의 오른손을 보세요. 길게 펼친 손가락이 요한의 등 뒤를 감싸, 아이를 아기 예수 쪽으로 받쳐 주고 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인물들 머리 위에 아주 가늘게 그어진 금빛 둥근 선을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코레조는 왜 성모가 눈을 거의 감은 듯 아래로 내리깔게 그렸을까요?
- 나라면젊은 코레조는 라파엘로와 레오나르도에게서 배운 것을 섞어 자기 그림을 만들었어요. 남의 것을 배워 내 것으로 만드는 일과 그대로 베끼는 일은 어디서 갈라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