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곱슬머리에 끝이 말려 올라간 콧수염을 기른 화가가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는 자기 얼굴이에요.
- 안토니 반 다이크가 1640년 무렵 동판에 바늘로 새겨 찍은 에칭이에요. 일곱 단계로 고쳐 찍은 판 가운데 맨 첫 단계예요.
- 종이의 대부분이 비어 있고 얼굴만 떠 있어서, 화가가 판 위에서 어디까지 손을 댔는지 그대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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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터 보세요. 앞쪽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와 우리를 똑바로 봐요. 몸은 저쪽을 향했는데 시선만 이쪽이라, 누가 부르자 막 돌아본 순간 같아요. 눈 주위 그늘은 선이 아니라 아주 작은 점을 촘촘히 찍어서 만들었어요.
왼쪽의 머리카락을 확대해 보세요. 바늘로 그은 가는 선이 물결처럼 겹치며 고리 모양 곱슬을 만들어요. 선이 빽빽한 곳은 어둡고 성긴 곳은 밝아요. 검은 잉크 한 가지로 머리카락의 윤기까지 냈어요.
턱 아래로 내려가 볼까요. 콧수염 끝은 위로 말려 있고, 아랫입술 밑에는 뾰족한 턱수염이 있어요. 턱 그림자는 짧은 빗금을 여러 겹 교차시켜 진하게 눌렀어요. 얼굴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 여기예요.
얼굴 아래 어깨는 어떤가요? 가는 선 몇 줄로 윤곽만 그어 두고 속은 텅 비었어요. 옷도, 배경도 없어요. 얼굴은 공들여 새기고 나머지는 남겨 둔 이 상태가 이 판의 첫 모습이에요.
오른쪽 아래 구석에는 A VAN DYCK 라는 글자가 있어요. 얼굴의 검은 판화 선과 달리 갈색빛이 돌아요. 화가의 이름이 이 종이 위에서 얼굴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셈이에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640년 무렵, 반 다이크는 마흔을 넘긴 런던의 궁정 화가였어요.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루벤스의 작업실에서 일했던 그는, 1632년 영국 왕 찰스 1세의 궁정 화가가 되고 기사 작위도 받았어요. 왕과 왕비, 귀족들이 그 앞에 앉아 초상을 맡겼어요. 그런데 이 화가는 붓 말고 바늘도 들었어요.
일은 그보다 앞서 안트베르펜에서 시작됐어요. 1627년 이탈리아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반 다이크는 이름난 동시대 사람들의 얼굴을 판화로 모으는 일을 벌였어요. 왕족과 군인, 정치가와 학자, 화가와 수집가가 그 안에 들어갔어요. 대부분은 그가 그린 밑그림을 보고 전문 판화가들이 새겼고, 몇몇 얼굴만 그가 직접 동판에 바늘을 댔어요.
이 자화상도 그가 직접 새긴 판이에요. 그는 머리를 새기고, 옷깃 자리에는 가는 윤곽선만 그어 둔 채 손을 멈췄어요. 그리고 1641년 12월 런던에서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딸 유스티니아나가 태어나고 며칠 뒤였어요.
판은 화가보다 오래 남았어요. 1645년 무렵 안트베르펜의 출판업자 힐리스 헨드릭스가 초상 모음을 새로 펴내며, 이 판을 책의 첫 장으로 썼어요. 판화가 야코프 네이프스가 얼굴 아래에 상반신과 받침돌을 새겨 넣었지만, 반 다이크가 새긴 머리에는 손대지 않았어요. 지금 보는 종이는 그 전, 머리만 있던 첫 단계에서 찍은 한 장이에요.
다시 종이를 보세요. 얼굴 아래 넓은 빈자리는 화가가 세상을 떠난 뒤 다른 사람의 손이 채우게 될 자리였어요. 이 한 장 안에서는 아직 반 다이크 혼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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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얼굴에서 선으로 그린 곳과 점으로 찍은 곳을 각각 찾아볼 수 있나요?
- 왜일까반 다이크는 왜 어깨와 옷을 비워 둔 채 얼굴만 이렇게 꼼꼼히 새겼을까요?
- 나라면요즘 우리는 셀카를 찍을 때 마음에 들 때까지 여러 번 고치는데, 한 장의 동판이 일곱 단계에 걸쳐 고쳐진 것과 비슷한 마음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