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노란 비단 드레스에 진주를 두른 잉글랜드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가 왕관 곁에 서서 두 손을 포개고 있는 초상화예요.
- 잉글랜드 왕 찰스 1세의 궁정 화가였던 안토니 반 다이크가 1636년에 그렸어요.
- 왕관, 진주, 레이스가 모두 있는데도 그림은 조용하고 부드러워요. 왕비를 위엄보다 우아함으로 보여 주는 반 다이크의 방식이 잘 드러나요.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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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머리를 확대해 보세요. 이마 위로 짧은 곱슬머리가 동글동글 내려오고, 오른쪽 머리에는 검은 리본이 묶여 있어요. 입가는 웃을 듯 말 듯해요. 볼과 입술만 살짝 붉게 칠해서 얼굴이 하얗게 떠올라요.
가슴께를 보세요. 레이스 깃 한가운데 금 테두리 브로치가 있고, 그 아래 검은 리본에 커다란 보석이 매달려 있어요. 둥근 진주알마다 하얀 점 하나로 빛을 찍었어요. 그 점 하나 때문에 진주가 동그랗게 보여요.
왼쪽 탁자 위 왕관을 확대해 보세요. 진주를 두른 금관 꼭대기에 작은 십자 모양 장식이 서 있어요. 그런데 왕관은 머리 위가 아니라 탁자 위, 어둠 속에 반쯤 묻혀 있어요. 왕비라는 신분을 말하면서도 앞에 내세우지는 않아요.
오른쪽 소매 끝 레이스를 보세요. 꽃무늬가 들어간 넓은 레이스가 톱니 모양으로 노란 비단 위에 겹쳐 있어요. 레이스는 회색과 흰색 붓질로 무늬만 살짝 짚었는데, 멀리서 보면 섬세한 수가 다 보이는 것 같아요.
포갠 두 손을 확대해 보세요. 길고 가는 손가락이 서로를 가볍게 감싸요. 반 다이크가 그린 사람들은 대개 손이 이렇게 길고 우아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636년, 반 다이크는 서른일곱 살 무렵이었어요.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루벤스 곁에서 일했던 그는 1632년 런던으로 건너와 찰스 1세의 궁정 화가가 되었어요. 왕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주고, 템스 강가 블랙프라이어스에 살 집도 마련해 주었어요. 그는 왕과 왕비, 아이들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렸어요.
그림 속 왕비는 스물예닐곱 살이었어요.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딸로, 1625년 찰스 1세와 결혼해 잉글랜드 왕비가 되었어요. 개신교 나라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킨 왕비였어요.
이 초상은 처음부터 로마로 갈 그림이었어요. 왕비는 교황의 조카인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추기경에게 보내려고 이 그림을 맡겼어요. 추기경은 잉글랜드가 가톨릭으로 돌아오기를 바랐고, 왕비를 소중한 동맹으로 여겼어요. 그림은 두 궁정이 주고받은 여러 선물 가운데 하나였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그림 속 왕비가 아이를 가진 몸이라고 봐요. 배 위로 두 팔을 감싸듯 포갠 자세가 그 표시라는 거예요. 이듬해인 1637년 3월, 왕비는 딸 앤 공주를 낳았어요.
그림은 여러 손을 거쳐 미국의 라이츠먼 부부에게 갔고, 2019년 유증으로 메트에 왔어요. 반 다이크는 1641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이듬해 잉글랜드에는 왕과 의회의 내전이 시작되었고, 찰스 1세는 1649년 처형되었어요.
이제 왕비의 두 팔을 다시 보세요. 노란 비단 위에서 둥글게 겹쳐져 있어요. 미술관의 해석대로라면, 로마로 떠난 이 그림에는 곧 태어날 아이도 함께 있었던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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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오른쪽 아래 구석에 작게 적힌 글자를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반 다이크는 왜 왕관을 왕비의 머리 위가 아니라 옆 탁자에 놓았을까요?
- 나라면궁정 화가는 왕비를 가장 보기 좋은 모습으로 그려야 했어요. 오늘 우리가 사진을 고르고 보정해 올리는 것과 어떤 점이 닮았고, 어디까지가 괜찮다고 생각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