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바위 곁에서 자란 대나무가 바람에 잎을 흔드는 모습을 비단에 먹으로만 그렸어요.
- 조선 중기의 왕족 화가 이정(호 탄은)이 17세기 초에 그렸어요.
- 진한 먹과 옅은 먹 두 가지만으로 앞의 대나무와 뒤의 대나무, 바람까지 나누어 보여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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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대나무 뒤를 보세요. 흐릿한 회색 대나무가 한 겹 더 있어요. 먹에 물을 많이 섞어 그린 거예요. 진한 잎은 앞에, 옅은 잎은 뒤에 있는 것처럼 보여서 대숲이 깊어져요.
오른쪽으로 뻗은 가지 끝을 확대해 보세요. 칼끝처럼 뾰족한 잎들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요. 잎 하나하나를 붓 한 번에 눌렀다가 들어 올리며 그렸어요. 그래서 잎의 뿌리 쪽은 두껍고 끝은 날카롭게 빠졌어요.
맨 아래 바위를 보세요. 큰 붓으로 먹을 넓게 칠해 덩어리 하나로 만들었어요. 가늘고 잘 휘는 대나무 곁에, 무겁고 꼼짝 않는 바위를 둔 거예요. 둘이 짝을 이루어 그림의 균형을 잡아 줘요.
그림 왼쪽 위 구석을 보세요. 灘隱이라는 두 글자와 붉은 도장이 있어요. 탄은은 이정의 호예요. 화가가 그림 안에 남긴 이름표인 셈이에요.
그림 위에 덧붙인 두 장의 비단을 보세요. 파란 바탕에 금빛 큰 글자가 있고, 오른쪽 첫 두 글자가 석양(石陽)이에요. 이정은 왕족으로 석양정, 뒤에 석양군이라는 이름을 받았어요. 그 아래에는 다른 사람이 붓으로 쓴 글이 붙어 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592년, 일본군이 조선에 쳐들어왔어요. 임진왜란이에요. 세종의 현손으로 태어난 왕족이자 대나무 그림으로 이름난 이정도 이 전쟁을 피하지 못했어요. 그는 왜군의 칼에 오른팔을 크게 다쳤어요.
그래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어요. 두 해 뒤인 1594년 겨울, 그는 충청도 공주에서 화첩 「삼청첩」을 완성했어요. 검은 비단 위에 금가루를 갠 물감으로 대나무와 매화, 난초를 그린 책이에요. 이 화첩은 지금 간송미술관에 있고,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요.
「삼청첩」의 길도 순탄하지 않았어요. 병자호란 때 불에 일부가 탔고, 1935년 간송 전형필이 사들여 지금까지 지켜 왔어요. 화가도, 그의 그림도 전쟁을 지나온 셈이에요.
이 「풍죽도」는 전쟁이 끝난 뒤인 17세기 초에 그렸어요. 그는 바람 맞는 대나무를 여러 번 그렸어요. 간송미술관에 있는 또 다른 「풍죽도」는 2009년 처음 나온 오만원권 뒷면에, 어몽룡의 매화 그림과 함께 실렸어요.
이 그림은 바다를 건넜어요. 미국의 수집가 메리 그릭스 버크는 일본 미술을 중심으로 평생 많은 작품을 모았고, 그 안에 한국 그림도 있었어요. 2015년 메리 앤드 잭슨 버크 재단이 그 수집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이 그림도 뉴욕에 자리를 잡았어요.
한쪽으로 쏠린 잎들을 다시 보세요. 칼에 다친 뒤에도 붓을 놓지 않은 사람이 그린 잎이에요. 바람에 휘면서도 꺾이지 않은 대나무가 그 사람을 조금 닮아 보이지 않나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옅은 먹으로 그린 뒤쪽 대나무 잎은 진한 잎과 어디서 겹치는지 찾아볼 수 있나요?
- 왜일까이정은 왜 곧게 선 대나무가 아니라 바람에 휘는 대나무를 골랐을까요?
- 나라면흔들리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처럼, 요즘 내가 흔들리지만 놓지 않고 버티는 일은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