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긴 식탁에 예수와 열두 제자가 한 줄로 앉은 최후의 만찬 장면을 빨간 분필로 옮겨 그렸어요.
- 렘브란트 판 레인이 1634~35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벽화를 보고 따라 그린 소묘예요.
- 따라 그리면서도 렘브란트가 무엇을 바꾸었는지 하나하나 찾아볼 수 있는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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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의 예수를 확대해 보세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눈을 내리깔았어요. 얼굴과 수염은 짙은 선으로 또렷하지만, 몸은 흐린 선 몇 줄뿐이에요. 바로 옆에는 긴 머리의 제자가 몸을 기울이고 있어요.
예수 머리 위를 보세요. 레오나르도의 벽화에서는 예수 뒤에 창문이 열려 있어요. 렘브란트는 그 자리에 술 장식이 달린 커다란 덮개를 그려 넣었어요. 비스듬한 빗금을 겹겹이 쳐서 그 아래를 어둡게 만들었어요.
왼쪽 끝의 제자들로 가 보세요. 세 사람이 겹쳐 서서 가운데 쪽을 바라봐요. 한 사람은 손바닥을 들어 보이고, 그 앞으로 누군가의 팔이 길게 뻗어 있어요. 빠르게 그은 굵은 선 몇 개로 놀란 몸짓을 잡았어요.
오른쪽 아래 식탁 밑을 보세요. 몸을 웅크린 동물 한 마리가 있어요. 레오나르도의 벽화에는 동물이 없어요. 렘브란트가 이야기 속에 일상의 한 조각을 슬쩍 끼워 넣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634년, 렘브란트는 스물여덟 살이었어요. 고향 레이던을 떠나 암스테르담에 자리 잡은 지 몇 해 만에, 그는 도시에서 손꼽히는 초상화가가 되어 있었어요. 1632년에 그린 단체 초상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어요.
그해 6월 그는 사스키아 판 아윌렌뷔르흐와 결혼했어요. 사스키아는 렘브란트와 함께 일하던 그림 상인 헨드릭 판 아윌렌뷔르흐의 사촌이었어요. 두 사람은 사스키아의 고향인 북쪽 프리슬란트에서 식을 올렸어요.
렘브란트는 평생 이탈리아에 가지 않았어요. 젊은 그를 눈여겨본 정치가 콘스탄테인 하위헌스는, 렘브란트와 친구 얀 리번스가 이탈리아에 갈 시간이 없고 이탈리아 그림은 네덜란드에서도 볼 수 있다고 했다고 적어 남겼어요. 그 대신 렘브란트는 이탈리아 거장들의 판화와 그림을 모으며 그 구도를 공부했어요.
레오나르도가 1490년대에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도 그는 판화로만 알았어요. 렘브란트는 이 벽화를 바탕으로 한 소묘를 세 점 남겼는데, 이 그림은 그중 빨간 분필로 크게 그린 한 장이에요. 흐린 선 위로 진한 선이 다시 지나간 자국이 있어, 두 번에 걸쳐 그리며 곳곳을 고쳤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 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사스키아는 1642년 세상을 떠났고, 렘브란트는 1656년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했어요. 이 소묘는 오랜 세월을 지나 1975년 로버트 레먼 컬렉션과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이제 아래 가장자리 오른쪽을 보세요. 빨간 분필로 흘려 쓴 렘브란트의 서명이 있어요. 남의 벽화를 따라 그린 종이에, 그는 자기 이름을 적어 두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흐린 선과 진한 선이 겹쳐 있는 곳을 찾아볼 수 있나요? 진한 선이 흐린 선과 다른 쪽으로 간 곳도 있나요?
- 왜일까렘브란트는 왜 예수 뒤의 밝은 창문을 어두운 덮개로 바꾸었을까요?
- 나라면렘브란트는 남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자기 생각을 더했어요. 요즘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따라 하거나 고쳐 쓸 때, 배움과 베끼기는 어디서 갈릴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