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군인과 구경꾼, 말과 개가 뒤엉킨 긴 행렬 한가운데서, 가시관을 쓴 예수가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려 쓰러진 장면을 새긴 동판화예요.
- 독일 콜마르의 화가이자 판화가 마르틴 숀가우어가 1475~80년 무렵 구리판에 선을 파서 찍었어요.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판화를 숀가우어의 판화 가운데 가장 큰 작품이라고 설명해요. 가로 43센티미터 종이에 수십 명의 사람이 가는 선만으로 새겨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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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운데 예수의 얼굴을 확대해 보세요. 가시가 삐죽삐죽 솟은 관 아래로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지친 눈은 우리 쪽을 조용히 바라봐요. 그 앞에서 한 남자가 예수의 허리에 묶은 밧줄을 거칠게 잡아당겨요. 꼬인 밧줄의 결까지 한 올 한 올 새겨져 있어요.
아래쪽 땅바닥을 보세요. 털이 복슬복슬한 개 한 마리가 앞발을 뻗고 엎드려 고개를 들고 있어요. 옆에는 허리띠를 맨 아이의 발과 군인의 장화가 지나가요.
위쪽 바위 뒤를 확대해 보세요. 머리에 천을 두른 여인들이 모여 있고, 그 가운데 한 여인이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곁의 사람들에게 부축받아요. 뒤에서는 둥근 후광을 두른 젊은 남자가 손을 얼굴에 대고 슬퍼해요. 앞쪽의 소란과 떨어진 곳에서, 이들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어요.
왼쪽 위 먼 언덕을 보세요. 창을 든 기사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언덕 너머로 멀어지고, 언덕 위에는 작은 사람 하나가 서 있어요. 하늘은 가로로 촘촘히 그은 선으로만 표현했어요. 행렬은 저 언덕 너머 처형 장소까지 길게 이어져요.
아래 가운데 땅을 확대해 보세요. M과 S 사이에 십자 모양 표시가 들어간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숀가우어는 판화에 날짜를 넣지 않고 이 머리글자로만 서명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숀가우어는 알자스 지방의 도시 콜마르에서 금세공사 카스파르 숀가우어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가 태어난 해는 1435년에서 1450년 사이로만 짐작될 만큼 기록이 적어요. 1473년 그는 콜마르의 성 마르틴 교회에 걸릴 큰 제단화 「장미 덩굴 속의 성모」를 그렸어요.
그는 화가였지만 판화로 훨씬 더 멀리 알려졌어요. 금세공 집안에서 익힌 날카로운 조각칼 솜씨로 구리판에 선을 새겼고, 찍어 낸 판화는 여러 나라로 팔려 나갔어요.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이 판화의 큰 크기와 구성이, 지금은 잃어버리고 복제본으로만 전하는 얀 반에이크의 같은 주제 그림을 본뜬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해요.
그의 판화가 얼마나 멀리 갔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가 있어요. 16세기 미술가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는, 소년 미켈란젤로가 숀가우어의 판화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을 보고 그대로 그림으로 옮겼다고 적었어요.
1491년 숀가우어는 라인강 가의 브라이자흐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이듬해 1492년, 젊은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를 만나려고 콜마르를 찾아왔지만 이미 늦었고, 숀가우어의 형제들이 그를 맞았어요. 이 판화는 193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왔어요.
다시 예수의 얼굴과 밧줄을 보세요. 붓도 색도 없이, 구리판에 판 가는 선만으로 숀가우어는 이 무거운 순간을 오백 년 넘게 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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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이 판화 속에서 예수를 돕거나 걱정하는 사람과, 괴롭히는 사람을 각각 찾아볼 수 있나요?
- 왜일까숀가우어는 왜 예수 둘레를 이렇게 많은 사람과 동물로 빽빽하게 채웠을까요?
- 나라면이 판화 속 많은 사람은 누군가의 고통을 그냥 구경하고 있어요. 오늘 나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볼 때 구경꾼에 가까운가요, 돕는 사람에 가까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