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6세기
라파엘로 산치오
Raphael · 1483–1520
우르비노에서 열한 살에 고아가 된 뒤, 서른일곱 해 짧은 생애에 페루자와 피렌체를 거쳐 로마 교황의 방 벽과 성 베드로 대성당 설계까지 맡은 화가예요.
생애 장면
라파엘로 산치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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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4우르비노
1494년 8월, 우르비노의 궁정 화가 조반니 산티가 세상을 떠나요. 그는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우르비노 영주 집안을 기리는 긴 운문 연대기도 쓴 사람이었어요. 남은 아들 라파엘로는 열한 살이었어요.
어머니 마자는 그보다 세 해 앞선 1491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소년은 아버지의 공방과 그곳 사람들 틈에서 붓을 익혔어요.
- 1500치타 디 카스텔로
1500년 12월 10일, 작은 도시 치타 디 카스텔로에서 계약서 한 장이 쓰여요. 양모 상인 안드레아 바론치가 산타고스티노 성당의 가족 예배당에 걸 성 니콜라 다 톨렌티노 제단화를 주문한 거예요. 그림을 맡은 사람은 둘이었어요.
한 사람은 아버지 공방에서 일하던 나이 든 화가 에반젤리스타 다 피안 디 멜레토였어요. 다른 한 사람이 열일곱 살의 라파엘로였어요. 그림은 이듬해 9월에 완성되었어요. 하지만 1789년 지진으로 크게 상했고, 남은 조각들은 지금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어요.
- 1504페루자
페루자의 프란치스코회 수녀원, 성 안토니오 수녀원의 수녀들이 제단화를 기다려요. 스무 살 무렵의 라파엘로가 옥좌에 앉은 성모와 성인들을 그렸어요. 이 무렵 그는 「성모의 결혼」에 자기 이름과 1504라는 해를 적어 넣기도 했어요.
16세기 화가 전기 작가 바사리는 이 제단화의 아기 예수에게 옷을 입힌 것이 수녀들의 바람이었다고 적었어요. 그래서 아기는 하얀 셔츠 차림으로 성모 무릎에 앉아 있어요. 옆에서는 아기 요한이 두 손을 모으고 올려다봐요.
이때 그린 그림성인들과 함께 옥좌에 앉은 성모자 - 1508~10로마
1508년, 라파엘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가요. 교황궁 서명의 방 벽을 맡은 거예요. 같은 무렵 그는 펜과 갈색 잉크로 「루크레티아」를 그렸어요. 고대 로마 이야기 속 여인이 오른손에 단검을 쥐고, 왼팔을 옆으로 높이 뻗었어요.
판화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이 소묘를 구리판에 새겼어요. 바사리는 마르칸토니오가 로마에 와서 라파엘로의 아름다운 종이 한 장을 동판으로 새겼다고 적었어요. 이 종이의 뒷면은 검은 분필로 문질러져 있고, 앞면 선은 뾰족한 철필로 눌려 있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것을 선을 다른 면에 옮겨 그린 흔적으로 봐요.
이때 그린 그림루크레티아 - 1514로마
1514년 봄,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하던 건축가 브라만테가 세상을 떠나요. 교황 레오 10세는 그 일을 서른한 살의 라파엘로에게 맡겼어요. 화가가 대성당 공사를 이끌게 된 거예요.
같은 무렵 그의 가까운 후원자 비비에나 추기경이 자기 조카딸 마리아를 그와 약혼시켰어요. 하지만 결혼식은 끝내 열리지 않았어요. 마리아는 혼인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지금 로마 판테온에 라파엘로 곁에 묻혀 있어요.
- 1520로마
1520년 4월 6일 성금요일, 라파엘로가 로마에서 세상을 떠나요. 서른일곱 살이었어요. 갑작스러운 병이었어요.
바사리는 그가 마지막으로 그리던 「그리스도의 변모」가 누운 몸 머리맡에 걸렸다고 적었어요. 그는 바라던 대로 고대 신전이던 판테온에 묻혔어요. 이 사이트의 수녀원 제단화와 「루크레티아」는 그 짧은 생애의 앞쪽, 페루자와 로마 첫 몇 해의 손이 남긴 것이에요.
함께한 사람들
- 조반니 산티우르비노의 궁정 화가였던 아버지로, 라파엘로가 열한 살 때 세상을 떠났어요.
- 에반젤리스타 다 피안 디 멜레토아버지 공방의 화가로, 1500년 바론치 제단화를 함께 맡았어요.
- 율리오 2세1508년 라파엘로를 로마로 불러 교황궁 방들의 벽화를 맡긴 교황이에요.
-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라파엘로의 소묘를 판화로 새겨 널리 퍼뜨린 판화가예요.
- 비비에나 추기경라파엘로의 후원자로, 조카딸 마리아와 그를 약혼시켰어요.
같은 시대를 산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