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 Meninas (detail, self-portrait)에 그려진 얼굴

화가 · 17세기

디에고 벨라스케스

Velázquez · 1599–1660

세비야 화가의 작업실에서 붓을 잡아 스페인 왕 펠리페 4세 곁에서 평생을 보내며, 왕과 하인과 성인을 같은 눈높이의 빛으로 그린 화가예요.

61살았던 해
17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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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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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611세비야

    1611년 9월, 열두 살 소년의 아버지가 서류에 서명해요. 아들 디에고를 화가 프란시스코 파체코의 집에 6년 동안 견습생으로 맡긴다는 계약서예요. 계약은 그 전해 12월부터 친 것으로 되어 있었어요. 소년은 그날부터 스승의 집에서 먹고 자며 그림을 배웠어요.

    파체코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책을 쓰고, 시인과 학자들을 집에 불러 모으는 사람이었어요. 어린 벨라스케스는 물감 냄새와 함께 그런 대화를 듣고 자랐어요.

  2. 1618세비야

    1618년 4월 23일, 열여덟 살의 벨라스케스가 결혼식을 올려요. 신부는 스승 파체코의 딸 후아나였어요. 한 해 전 그는 세비야 화가 조합의 시험을 통과해 혼자 일할 수 있는 화가가 되었어요.

    파체코는 훗날 자신의 책에 이 결혼 이야기를 적었어요. 제자를 다섯 해 가르친 뒤, 그 성품과 앞날을 보고 딸을 주었다고요. 이듬해 첫딸 프란시스카가, 1621년에는 둘째 이그나시아가 태어났어요.

  3. 1622마드리드

    1622년 봄, 스물두 살의 벨라스케스가 처음으로 수도 마드리드에 가요. 궁정에 자리를 얻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왕을 그릴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어요. 파체코의 부탁으로 이름난 시인 루이스 데 공고라의 초상을 그렸어요. 세비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부엌과 식탁, 평범한 얼굴들을 강한 빛과 그림자로 그렸어요. 「엠마오의 저녁 식사」가 이 무렵 그림이에요.

    이때 그린 그림엠마오의 저녁 식사
  4. 1623마드리드

    1623년 여름, 마드리드에서 다시 부름이 와요. 왕의 신하 올리바레스 백작이 그를 불렀고, 왕실 사제 후안 데 폰세카가 그를 자기 집에 묵게 했어요. 벨라스케스는 먼저 폰세카의 초상을 그렸어요. 파체코에 따르면 이 그림은 다 그리자마자 왕궁으로 옮겨졌고, 왕실 사람들이 돌려 보았어요.

    그해 8월 30일, 벨라스케스는 열여덟 살의 펠리페 4세를 그렸어요. 10월 6일 그는 한 달에 20두카트를 받는 왕의 화가가 되었어요. 그해 마드리드에 와 있던 영국 왕세자 찰스의 모습도 스케치했지만, 그 그림은 지금 전하지 않아요.

    이때 그린 그림스페인 왕 펠리페 4세
  5. 1627마드리드

    1627년, 펠리페 4세가 궁정 화가들에게 시합을 붙여요. 주제는 선왕 펠리페 3세가 모리스코를 스페인에서 내쫓은 일이었어요. 경쟁자는 빈센테 카르두초, 에우헤니오 카헤스, 안젤로 나르디였어요.

    이긴 사람은 가장 젊은 벨라스케스였어요. 그는 상으로 궁정 안의 시종 자리를 받았어요. 하지만 그 그림은 1734년 마드리드 알카사르 궁에 난 큰불에 타 버려, 지금은 아무도 볼 수 없어요.

  6. 1628마드리드

    1628년, 플랑드르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외교 임무를 띠고 마드리드에 와요. 그는 여러 달 머물며 왕의 초상을 그리고 궁의 소장품을 베껴 그렸어요.

    파체코는 루벤스가 다른 화가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고 적었어요. 그런데 벨라스케스와는 가깝게 지냈고, 둘이 함께 엘에스코리알 수도원에 그림을 보러 갔대요. 이듬해 벨라스케스는 왕의 허락을 받아 첫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어요.

  7. 1650로마

    1650년 3월 19일, 로마 판테온 앞 회랑에 그림 한 점이 걸려요. 벨라스케스가 그린 조수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이에요. 쉰 살의 벨라스케스는 왕궁에 들일 그림과 조각을 사러 두 번째로 이탈리아에 와 있었어요. 같은 해 그는 로마의 화가 아카데미 산 루카의 회원이 되었고,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도 그렸어요.

    그해 11월, 그는 파레하를 노예의 처지에서 풀어 주는 문서에 서명했어요. 자유는 네 해 뒤부터 효력을 갖는 조건이었어요.

    이때 그린 그림후안 데 파레하
  8. 1660마드리드

    1659년 11월, 벨라스케스는 오래 바라던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어요. 집안 내력 조사가 길어지자 교황의 특별 허가까지 받아 낸 끝이었어요. 이듬해 봄 그는 궁정의 숙소를 맡은 관리로서, 프랑스와의 국경 꿩섬에서 열릴 왕실 혼인 만남의 숙소와 장식을 준비하러 떠났어요.

    6월 말 마드리드로 돌아온 그는 7월 말 병으로 쓰러졌어요. 1660년 8월 6일, 예순한 살로 세상을 떠났어요. 며칠 뒤 아내 후아나도 남편을 따라갔어요. 그가 그린 왕과 조수의 얼굴은 지금 세계의 미술관에 남아, 이 사이트에서도 우리를 마주 봐요.

함께한 사람들

  • 프란시스코 파체코세비야의 스승이자 장인이며, 제자의 젊은 날을 책에 기록한 사람이에요.
  • 후아나 파체코1618년에 결혼한 아내로, 남편이 죽고 며칠 뒤 세상을 떠났어요.
  • 펠리페 4세1623년부터 평생 벨라스케스를 곁에 둔 스페인 왕이에요.
  • 올리바레스 백작왕의 신하로, 젊은 벨라스케스를 마드리드로 불러올렸어요.
  • 페테르 파울 루벤스1628년 마드리드에서 만나 함께 그림을 보러 다닌 플랑드르 화가예요.
  • 후안 데 파레하작업실의 조수로, 1650년 로마에서 자유를 약속받고 뒷날 화가가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