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8세기
프란시스코 고야
Goya · 1746–1828
1746년 아라곤의 작은 마을 푸엔데토도스에서 태어나 스페인 왕의 화가가 되었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된 뒤에도 1828년 보르도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사람과 사건과 악몽을 그린 화가예요.
생애 장면
프란시스코 고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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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1파르마
1771년, 이탈리아 파르마의 미술 아카데미가 그림 공모를 열어요. 주제는 알프스 꼭대기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내려다보는 한니발이었어요. 스물다섯 살의 고야도 그림을 보냈어요. 1등은 이탈리아 화가 파올로 보로니에게 돌아갔지만, 고야는 여섯 표와 특별 언급을 받았어요.
그전까지 고야는 마드리드 왕립 아카데미 공모에서 두 번 떨어졌어요. 1763년과 1766년이었어요. 1766년의 상은 사라고사 출신 화가 라몬 바예우가 받았어요. 몇 해 뒤 고야는 바로 그 바예우 집안의 딸과 결혼해요.
- 1781사라고사
1781년 3월, 사라고사 필라르 성당의 공사 위원회가 고야의 밑그림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고야가 맡은 둥근 천장 「순교자들의 여왕」 아래 네 모서리에 들어갈 그림이었어요. 위원회는 붓질이 거칠어 인물이 덜 끝난 것 같다고 보았어요. 이 일을 이끈 사람은 처남 프란시스코 바예우였어요.
고야는 1773년 바예우의 여동생 호세파와 결혼했어요. 처남은 궁정에서 이름난 선배 화가였어요. 3월 27일, 고야는 위원회에 격한 항의 글을 올렸어요. 그래도 결국 밑그림을 다시 그렸어요.
- 1787마드리드
1787년 1월 30일, 마드리드의 산카를로스 은행이 고야에게 그림값을 치러요. 영수증에는 왕, 알타미라 백작, 톨로사 후작의 초상 값으로 1만 레알이 적혀 있어요. 한 해 전 고야는 왕의 화가로 임명되었어요. 마흔 살의 고야에게 마드리드 귀족들의 초상 주문이 이어졌어요.
알타미라 백작은 이 은행을 이끄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어요. 백작은 곧 가족의 초상도 고야에게 맡겼어요. 백작 부인이 갓난 딸을 무릎에 안은 그림, 그리고 빨간 옷을 입은 아들 마누엘의 그림이에요. 마누엘 발치에서는 고양이 세 마리가 줄에 묶인 까치를 노려봐요.
이때 그린 그림알타미라 백작 부인과 딸 마리아 아구스티나 - 1793카디스
1792년 겨울, 남쪽 안달루시아로 간 고야가 큰 병으로 쓰러져요. 그는 카디스의 부유한 수집가 세바스티안 마르티네스의 집에서 몇 달 동안 앓았어요. 어지럼증과 마비는 차츰 나았지만 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어요. 마흔여섯 살의 왕의 화가는 그 뒤로 평생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1794년 1월, 고야는 작은 그림 한 묶음을 마드리드 왕립 아카데미에 보내요. 아카데미의 베르나르도 데 이리아르테에게 쓴 편지에서, 주문받은 그림에서는 하기 어려운 관찰을 담았고 변덕과 상상을 마음껏 펼쳤다고 설명했어요. 그림들은 아카데미 회원들 앞에 선보였어요.
- 1799마드리드
1799년 2월 6일, 마드리드 신문에 판화 광고가 실려요. 프란시스코 고야가 생각해 내고 동판에 새긴 변덕스러운 주제의 판화 모음을 판다는 내용이었어요. 80장으로 된 「로스 카프리초스」예요. 환자를 진찰하는 당나귀 의사, 밤하늘을 나는 마녀, 허영에 빠진 사람들이 나와요. 그런데 고야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를 거둬들였어요.
그해 10월, 고야는 왕의 으뜸 궁정 화가가 돼요. 1803년에는 카프리초스 동판과 팔리지 않은 240벌을 왕 카를로스 4세에게 바쳤어요. 그 대가로 아들 하비에르에게 연금을 내려 달라고 청했어요.
- 1806마드리드
1806년 6월, 스페인 사람들은 한 수사 이야기로 떠들썩해요. 탈옥한 강도 마라가토가 한 집 사람들을 붙잡았는데, 동냥하러 들른 프란치스코회 수사 페드로 데 살디비아가 강도의 총을 빼앗아 허벅지를 쏘았어요. 이야기는 신문과 소책자, 노래와 판화로 퍼졌어요. 예순 살의 고야는 이 사건을 작은 나무판 여섯 장에 연재만화처럼 나눠 그렸어요.
다섯째 장면에서 갈색 옷의 수사는 몸을 숙여 총을 쏘고, 노란 바지의 강도는 두 팔을 벌린 채 휘청여요. 회색 말은 몇 번의 붓질로만 남은 채 달아나요. 여섯 점은 1812년 아내 호세파가 세상을 떠난 뒤 만든 재산 목록에도 고야의 것으로 올라 있었어요.
이때 그린 그림말이 달아나는 사이 마라가토를 쏘는 페드로 수사 - 1814마드리드
1814년 2월, 프랑스 군대가 물러간 마드리드에서 예순일곱 살의 고야가 섭정 위원회에 청을 넣어요. 폭군에 맞선 봉기의 영웅적인 순간들을 붓으로 길이 남기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위원회는 이 청을 받아들여 고야에게 돈을 대 주었어요. 그렇게 1808년 5월 2일과 3일의 마드리드를 그린 큰 그림 두 점이 나왔어요.
같은 무렵 고야는 판화 「앉아 있는 거인」을 새겼어요. 늦어도 1818년에는 완성된, 동판에 명암을 입히는 애쿼틴트 판화예요. 어두운 하늘 아래 거대한 사람이 땅끝에 등을 보이고 앉아,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를 봐요. 오른쪽 위에는 가는 초승달이 떠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앉아 있는 거인 - 1824보르도
1824년 여름, 일흔여덟 살의 고야가 프랑스 보르도에 도착해요. 왕에게는 플롱비에르 온천에서 요양하겠다며 허락을 받은 길이었어요. 먼저 와 있던 친구 극작가 레안드로 페르난데스 데 모라틴은 편지에, 고야가 귀가 먹고 늙고 약한 데다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모르는데도 무척 즐거워한다고 적었어요.
고야는 뒤이어 온 레오카디아 소리야와 보르도에서 살다가 1828년 4월, 여든두 살로 세상을 떠났어요. 1888년 스페인 영사가 그의 무덤을 열었을 때 유골에는 머리뼈가 없었어요. 유해는 스페인으로 돌아가 1919년 마드리드의 산안토니오 데 라 플로리다 성당에 묻혔어요. 그가 남긴 그림들은 흩어져 뉴욕과 시카고의 미술관까지 갔고, 이 사이트의 고야 네 점도 그곳에서 왔어요.
남긴 말
El sueño de la razón produce monstruos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태어나요. (「로스 카프리초스」 43번 판화에 고야가 새겨 넣은 문장이에요.)
함께한 사람들
- 호세파 바예우1773년에 결혼한 아내로, 1812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 프란시스코 바예우아내의 오빠이자 궁정 화가로, 필라르 성당 일에서 고야와 부딪혔어요.
- 마르틴 사파테르사라고사에서 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로, 고야가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 하비에르 고야어른이 될 때까지 산 외아들로, 아버지가 카프리초스 동판을 바치며 연금을 청한 아들이에요.
- 레안드로 페르난데스 데 모라틴극작가 친구로, 보르도에서 고야의 마지막 몇 해를 곁에서 지켜봤어요.
- 레오카디아 소리야고야의 마지막 여러 해를 함께 살며 보르도까지 따라간 사람이에요.
같은 시대를 산 화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1748–1825
엘리자베트 비제르브룅Elisabeth Louise Vigée Le Brun1755–1842
가쓰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1760–1849
조슈아 존슨Joshua Johnson1763–1825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 Honoré Fragonard1732–1806
장바티스트 그뢰즈Jean-Baptiste Greuze1725–1805
토머스 로런스Sir Thomas Lawrence1769–1830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Giovanni Domenico Tiepolo1727–1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