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검은 모자와 모피 깃 겉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초록 탁자에 팔을 얹고 이쪽을 비스듬히 바라보는 초상화예요.
- 한스 홀바인(소)이 1532년 런던에서, 독일 상인 헤르만 폰 베디히 3세를 참나무 판에 유화로 그렸어요.
- 가로 32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판 안에 반지, 장갑, 책, 쪽지까지 이 사람을 알려 주는 물건이 또렷하게 들어 있어요.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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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확대해 보세요. 두 눈은 옆으로 살짝 돌아가 이쪽을 보고, 입은 꼭 다물었어요. 반듯하게 자른 갈색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셔츠 깃에는 작은 주름 장식이 달려 있어요. 붓 자국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매끈하게 칠했어요.
오른쪽 파란 바탕에 쓰인 금색 글자를 보세요. 라틴어로 그의 나이 29세라는 뜻이에요. 왼쪽에는 1532년이라는 해가 같은 금색으로 적혀 있어요. 미술관 기록을 보면 이 그림의 재료는 유화 물감과 금이에요.
오른쪽 아래 손을 확대해 보세요. 한 손에 접은 가죽 장갑을 쥐고, 손가락에는 굵은 금반지를 끼었어요. 반지의 둥근 면에는 뾰족한 검은 산 모양이 든 문장이 그려져 있어요.
왼쪽 아래 책을 확대해 보세요. 금빛 책장 사이로 쪽지 한 장이 비어져 나와 있어요. 쪽지에는 라틴어로 진실은 미움을 낳는다는 말이 쓰여 있어요. 로마 시대 희극 작가 테렌티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532년, 서른다섯 살 무렵의 홀바인이 다시 런던에 닿았어요. 바젤 집에는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두고 혼자 떠나온 길이었어요. 바젤은 종교개혁으로 교회 안의 그림과 조각이 부서진 뒤, 제단화 주문이 거의 끊긴 도시였어요.
런던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1526년 첫 방문 때 그는 학자 에라스뮈스의 소개장을 들고 토머스 모어의 집을 찾아가 모어 가족을 그렸어요. 그때 에라스뮈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바젤에서는 예술이 얼어붙고 있어 이 화가가 영국에 돈을 벌러 간다고 적었어요. 그런데 1532년에 모어는 대법관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새 손님이 되어 준 사람들은 템스강가 스틸야드의 독일 상인들이었어요. 홀바인과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었지요. 홀바인은 그해와 이듬해에 이 상인들을 한 사람씩 그렸고, 그들의 회관에 걸 큰 그림 「부의 승리」와 「가난의 승리」도 맡았어요.
이 젊은이는 누구일까요? 반지의 문장은 쾰른 베디히 집안의 것이에요. 미술관은 1532년에 스물아홉이라는 금색 글자와 맞춰 보아, 그가 아마 스틸야드의 일원이던 헤르만 폰 베디히 3세일 거라고 봐요.
베를린에는 홀바인이 이듬해 그린 또 다른 베디히 집안 남자의 초상이 있어요. 두 그림은 18세기에 빈의 쇤보른 집안 소장품으로 함께 있었어요. 이 그림은 뉴욕의 에드워드 S. 하크니스가 남긴 유산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이제 다시 손가락의 반지를 보세요. 이름은 그림 어디에도 없어요. 손톱만 한 반지 위의 문장이 거의 오백 년 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 주는 열쇠가 되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왼쪽 파란 바탕에서 이 그림이 그려진 해를 찾아 읽어 볼 수 있나요?
- 왜일까상인은 왜 하필 진실은 미움을 낳는다는 말을 쪽지에 적어 초상화에 넣었을까요?
- 나라면이 사람은 반지와 책, 쪽지로 자신을 소개했어요. 오늘 우리가 프로필 사진 한 장에 나를 보여 줄 물건을 하나 넣는다면 무엇을 고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