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지붕이 가파른 집들이 모인 시골 마을로 가는 길에, 말 탄 사람들과 걷는 사람들이 오가는 풍경 소묘예요.
- 피렌체의 수도사 화가 프라 바르톨로메오가 1501년 무렵 펜과 갈색 잉크로 그렸어요.
- 높이 30센티미터쯤 되는 종이에, 짧은 펜 선 몇 개로 사람과 말과 풀숲을 재빨리 붙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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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가운데 마을부터 보세요. 지붕이 높고 가파른 집 두 채가 붙어 서 있고, 지붕 위에 작은 굴뚝이 솟아 있어요. 앞쪽 집 벽에는 네모난 문이 하나 그려져 있어요. 벽은 세로 선을 촘촘히 그어 그늘을 냈어요.
마을 앞길을 확대해 보세요. 콩알만 한 사람 몇이 걸어가고 있어요. 얼굴도 손도 없이, 둥근 선 두세 개가 한 사람이에요. 그래도 누가 앞서고 누가 뒤따르는지 다 보여요.
이제 앞쪽 말 탄 사람들로 내려오세요. 두 사람이 나란히 말을 타고 마을 쪽으로 가요. 왼쪽 사람은 챙 넓은 모자를 썼어요. 말 옆에는 걸어서 따라가는 사람이 하나 더 있어요. 말 다리는 몇 번 그은 선이 전부인데도 걷는 듯 움직여요.
그 아래 맨 앞의 두 사람을 보세요. 한 사람이 팔을 앞으로 내뻗고 성큼 발을 내딛어요. 몸에 그은 빗금이 옷의 그늘이 되고, 비스듬한 선 몇 줄이 땅이 돼요. 길을 서두르는 사람의 급한 걸음이 느껴져요.
위쪽을 확대해 보세요. 꼬불꼬불한 선이 길게 이어져요. 구름일까요, 키 큰 나무의 잎일까요? 색도 그늘도 없이 윤곽선만 있어요. 종이 곳곳에는 작은 갈색 점들이 흩어져 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498년 봄,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에 성난 군중이 몰려들었어요. 수도사 사보나롤라를 붙잡으러 온 사람들이었어요. 바사리는 그때 수도원 안에 있던 젊은 화가 바초 델라 포르타가, 살아서 나가면 수도사가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적었어요. 이 사람이 훗날의 프라 바르톨로메오예요.
바초는 사보나롤라의 설교를 따르던 사람이었어요. 바사리에 따르면 그는 사보나롤라가 벌인 허영의 소각 때 자기가 그린 누드 소묘들을 불 속에 던졌어요. 사보나롤라는 붙잡힌 그해에 처형되었어요.
1500년, 스물일곱 살의 그는 맹세대로 도미니코회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었어요. 그리고 몇 해 동안 붓을 거의 놓았어요. 그리다 만 「최후의 심판」 벽화는 함께 작업장을 꾸리던 화가 마리오토 알베르티넬리가 마저 그렸어요. 그가 다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건 1504년 무렵 산마르코 수도원의 작업실을 맡으면서예요.
미술관은 이 소묘를 1501년 무렵, 바로 그 조용한 몇 해의 것으로 봐요. 바르톨로메오가 이런 풍경 소묘를 실제 시골 풍경을 보며 그렸다고 보는 학자가 많아요. 수도원의 화가가 성인 대신 시골 길에 펜을 댄 거예요.
이 종이는 18세기의 한 수집가가 바르톨로메오의 풍경 소묘를 모아 꾸민 앨범의 한 쪽이었어요. 그 앨범은 훗날 풀려 낱장으로 흩어졌어요. 이 장은 1975년 로버트 레먼 컬렉션과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다시 맨 앞, 팔을 뻗고 성큼 걷는 사람을 보세요. 붓을 거의 놓았던 수도사의 펜이 길 위의 이 바쁜 걸음을 붙잡아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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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이 그림에서 말은 모두 몇 마리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화가는 왜 집과 사람을 이렇게 적은 선으로만, 서둘러 그린 듯 남겼을까요?
- 나라면프라 바르톨로메오는 큰 결심을 한 뒤 한동안 일을 내려놓았어요. 오늘 우리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쉬어 가는 시간은 낭비일까요, 필요한 시간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