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천사 가브리엘이 무릎을 꿇고 마리아에게 아기 예수를 낳게 된다는 소식을 전하는 순간을 그렸어요.
- 산드로 보티첼리가 1490년 무렵 피렌체에서 나무판에 템페라와 금으로 그렸어요.
- 가로 31센티미터, 세로 19센티미터쯤인 작은 그림인데, 기둥과 바닥 줄무늬로 깊은 방 두 칸을 만들어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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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천사부터 보세요. 방금 내려앉은 듯 한쪽 무릎을 꿇고, 하얀 겉옷 자락이 뒤로 날리고 있어요. 손에 든 것은 하얀 백합이에요. 백합은 마리아의 깨끗함을 나타내는 꽃이라 수태고지 그림에 자주 나와요.
천사 날개 위쪽 어두운 벽을 확대해 보세요. 가느다란 금빛 점선이 비스듬히 쏟아져 내려요. 왼쪽 위에서 들어와 천사의 날개 너머 오른쪽 아래로 뻗는 빛이에요. 하늘에서 온 소식이 지금 이 집에 닿고 있다는 표시로 읽을 수 있어요.
가운데 기둥 오른쪽에는 하얀 커튼이 걷혀 있어요. 위에는 고리가 줄지어 달려 있고, 아래쪽 자락은 한쪽으로 묶여 둥글게 처졌어요. 커튼이 열리면서 안쪽 마리아의 방이 우리 눈앞에 드러나요.
이제 마리아를 보세요. 푸른 망토를 두르고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을 가슴에 얹었어요. 다른 손은 망토 자락을 살짝 쥐고 있어요. 머리 뒤의 둥근 테는 금빛 작은 점들로 찍혀 있어요.
오른쪽 위 나무 장 위에는 빨간 책 두 권과 검은 단지, 둥근 상자가 놓여 있어요. 손톱만 한 크기인데도 책 모서리와 상자 테두리까지 그려 넣었어요. 신성한 소식이 평범한 살림방에 찾아왔다는 느낌이 이런 물건에서 생겨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490년 무렵, 보티첼리는 마흔다섯 살 안팎이었어요. 십 년쯤 전 교황 식스토 4세의 부름으로 로마에 가서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함께 그리고 돌아온 뒤, 피렌체에서 제자들을 둔 공방을 꾸리고 있었어요. 1489~90년에는 피렌체의 체스텔로 성당을 위해 큰 「수태고지」 제단화도 그렸어요.
이 작은 판은 쓰임이 달랐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그림이 큰 제단화의 한 조각이 아니라, 개인이 곁에 두고 기도하려고 주문한 그림이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봐요. 주문한 사람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아요.
손바닥 두 개만 한 판이지만 보티첼리는 방을 꼼꼼히 지었어요. 미술관은 바닥과 기둥이 한 점으로 모이는 원근을 짚고, 그림 표면에 보이는 새긴 선을 화가가 일하던 방식을 보여 주는 흔적으로 꼽아요. 판에 새겨 둔 설계도인 셈이에요.
그 무렵 피렌체는 흔들리고 있었어요. 1492년 도시를 이끌던 로렌초 데 메디치가 세상을 떠났고,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1494년에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쫓겨났어요.
그림은 그 뒤 먼 길을 떠났어요. 로마의 바르베리니 가문 소장품에 있다가 피렌체를 거쳐, 1905년 7월 이탈리아를 떠났어요. 그 세관 도장이 지금도 판 뒷면에 남아 있어요. 베를린의 수집가 오스카 훌트신스키를 거쳐 1928년 베를린 경매에서 로버트 리먼의 손에 들어갔고, 197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이제 바닥의 붉은 줄무늬를 다시 보세요. 사백 년 넘게 여러 집과 나라를 떠돈 작은 판 위에서, 그 줄들은 지금도 화가가 처음 잡아 둔 한 점을 향해 곧게 달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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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천사와 마리아 사이에 서 있는 기둥과 문틀은 몇 개나 되나요?
- 왜일까보티첼리는 왜 천사와 마리아를 한 방에 두지 않고 기둥으로 갈라 두 칸에 나눠 그렸을까요?
- 나라면내 삶을 바꿀 큰 소식을 갑자기 들으면 나는 마리아처럼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일까요, 아니면 먼저 되물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