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부처의 제자인 나한 열여섯 분을 그린 긴 두루마리 가운데, 나무 굴에 앉은 나한과 염주를 든 나한이 나오는 장면이에요.
- 명나라 말의 화가 오빈이 1591년에 종이에 먹과 엷은 색으로 그렸어요.
- 두루마리 길이가 4미터가 넘어서, 옆으로 조금씩 펼치며 나한을 한 분씩 만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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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나무 속 빈자리에 한 나한이 앉아 있어요. 흰 두건 달린 옷을 머리부터 덮어쓰고 눈은 거의 감았어요. 흰 눈썹과 수염이 길게 늘어졌어요. 옷 사이로 보이는 붉은 속옷에는 물결 같은 주름이 겹겹이 그려져 있어요.
나무줄기를 확대해 보세요. 나뭇결이 가는 선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한가운데 옹이는 꼭 커다란 눈처럼 보여요. 가지 끝에는 검은 잎 뭉치가 꽃처럼 피어 있어요. 나무가 나한을 품은 채 살아 숨 쉬는 것 같아요.
오른쪽에 선 나한을 보세요. 오른손으로 염주를 가슴께에 쥐고, 왼손은 손가락을 세워 높이 들었어요. 입가에 웃음이 살짝 걸렸어요. 앉은 나한에게 무언가 말을 거는 것 같지 않나요?
오른쪽 끝 초록 바위는 네모난 판을 여러 겹 세워 둔 것처럼 생겼어요. 진짜 바위라기보다 깎아 만든 무대 장치 같아요. 오빈은 이렇게 현실에 없을 듯한 기이한 산과 바위를 즐겨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어요.
맨 아래 땅 끝을 보세요. 나한들이 선 땅이 칼로 자른 듯한 절벽에서 뚝 끝나요. 그 아래에는 아주 옅은 물결 선이 있어요. 나한들의 자리가 물 위에 뜬 섬처럼 보여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591년, 명나라는 만력 황제가 다스리고 있었어요. 그해 화가 오빈은 4미터가 넘는 종이에 나한 열여섯 분을 차례로 그려 넣고 날짜를 남겼어요. 나한은 부처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 땅에 남아 가르침을 지킨다고 믿어진 제자들이에요.
오빈은 푸젠성 푸톈에서 태어났어요. 고향을 떠나 남쪽 수도 난징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고, 불교 그림을 많이 남겼어요. 그림 솜씨가 알려지자 만력 황제가 그를 불러 중서사인이라는 벼슬을 주었어요.
나한 그림에는 오래된 본보기가 있었어요. 당나라 말에서 오대에 걸쳐 산 승려 화가 관휴는 나한을 툭 불거진 이마와 짙은 눈썹을 가진 괴상한 얼굴로 그렸어요. 그런데 이 장면의 두 나한은 오히려 동네에서 만날 법한 수수한 노인 얼굴이에요.
오빈을 아낀 사람 가운데 관리이자 서예가인 미만종이 있었어요. 미만종은 링비석이라는 구멍 숭숭한 돌을 손에 넣고, 오빈에게 그 돌을 열 방향에서 그려 달라고 맡겼어요. 그 두루마리는 2020년 베이징 경매에서 5억 위안이 넘는 값에 팔려 크게 화제가 됐어요.
이 1591년 두루마리는 에드워드 엘리엇 집안의 소장품이었다가, 1986년 더글러스 딜런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어요.
돌 하나를 열 번 돌려 가며 그린 화가라는 걸 알고 나서 오른쪽 끝 초록 바위를 다시 보세요. 겹겹이 세운 판 하나하나에 선이 몇 번씩 지나갔는지 천천히 세어 보게 될 거예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앉은 나한의 얼굴과 나무 옹이는 어디가 닮았는지 찾아볼 수 있나요?
- 왜일까오빈은 왜 진짜 같은 얼굴 둘레에 일부러 이상하게 생긴 나무와 바위를 그렸을까요?
- 나라면세상에 남아 무언가를 지키기로 한 나한처럼, 나라면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