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폭풍이 몰려오는 하늘 아래, 언덕 위에 선 에스파냐 도시 톨레도를 그렸어요.
- 엘 그레코가 1599~1600년 무렵, 20년 넘게 살아온 톨레도에서 그렸어요.
- 성인과 성경 장면을 주로 그린 화가가 사람 대신 도시 하나를 주인공으로 세운 그림이에요. 그의 풍경화는 이 그림을 포함해 두 점만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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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부터 보세요. 파란빛 사이로 회색 구름이 휘몰아치고, 흰 물감이 붓 자국째 번득여요. 번개가 치기 직전처럼 하늘은 어둡고 땅의 풀빛은 이상하게 밝아요. 이 대비 때문에 화면 전체가 숨을 멈춘 것 같아요.
언덕 꼭대기의 건물들을 확대해 보세요. 뾰족하게 솟은 탑은 톨레도 대성당의 종탑이고, 오른쪽의 네모난 큰 건물은 알카사르라는 성채예요. 건물들은 하얗게 질린 듯한 빛을 받아 어둠 속에서 떠올라요.
가운데에서 조금 왼쪽, 골짜기를 잇는 아치 다리가 보여요. 타호강을 건너는 알칸타라 다리예요. 아치 안쪽에 흰 물감을 길게 그어 돌다리에 빛이 스치는 모습을 냈어요. 다리 옆으로 탑과 성벽이 이어져요.
강가로 내려가 볼까요. 어두운 물가에 손가락 마디만 한 사람들이 서 있어요. 그 앞에는 지붕이 뾰족한 작은 건물 두 채가 물가에 서 있어요. 거대한 하늘 아래 사람은 이렇게 작아요.
오른쪽 아래 구석을 확대해 보세요. 바위 같은 흰 자리에 가는 글씨가 적혀 있어요. 그리스 문자로 쓴 화가의 서명이에요. 엘 그레코는 크레타섬 태생답게 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를 그리스 문자로 적곤 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600년 무렵, 엘 그레코는 예순 살 가까운 나이였어요. 그리스의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그림을 익힌 사람이에요. 1577년 무렵 성당과 수도원의 큰 제단화 일을 맡아 톨레도에 왔고, 그대로 이 도시에 눌러앉았어요.
톨레도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어요. 대성당을 위해 그린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은 그림값을 두고 대성당 측과 다툼이 벌어졌어요. 펠리페 2세의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을 위해 그린 「성 마우리티우스의 순교」는 왕의 마음에 들지 않아 원래 걸릴 자리에 걸리지 못했어요. 궁정 화가가 될 길은 그렇게 멀어졌어요.
그 대신 톨레도가 그를 붙잡았어요. 1561년 왕궁은 마드리드로 떠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대주교가 있는 에스파냐 교회의 중심이었어요. 성직자와 학자, 귀족들이 그의 그림을 찾았고, 1586년에는 산토 토메 성당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맡았어요. 1578년에 태어난 아들 호르헤 마누엘은 자라서 아버지의 화실에서 함께 일했어요.
엘 그레코는 1614년 톨레도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그 뒤 오랫동안 그의 그림은 낯설고 이상하다는 평을 들으며 잊혔어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새로운 그림을 찾던 화가와 비평가들이 그를 다시 찾아냈어요.
그 무렵 미국의 수집가 루이진 해브마이어가 이 그림을 사들였어요. 1929년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소장품과 함께 「톨레도 풍경」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이제 언덕 위의 도시를 다시 보세요. 화가가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은 도시가 먹구름 아래 하얗게 떠올라 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하늘에서 가장 밝은 곳과 가장 어두운 곳은 각각 어디인가요?
- 왜일까엘 그레코는 왜 맑은 날이 아니라 폭풍이 다가오는 순간의 톨레도를 골랐을까요?
- 나라면엘 그레코는 강가의 사람들을 손가락 마디만 하게 그리고 도시를 하늘과 건물로 보여 줬어요. 오늘 우리가 사는 동네를 소개할 때, 멋진 건물만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담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