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긴팔원숭이들이 나뭇가지와 바위에 매달려 놀고, 그 아래로 물결이 바위에 부딪히는 풍경을 먹으로만 그렸어요.
- 일본의 선승 화가 셋손 슈케이가 1570년 무렵 종이에 그린 여섯 폭 병풍 한 쌍이에요.
- 한 짝의 크기가 높이 1.6미터, 너비 3.5미터쯤이에요. 그 넓은 종이 위에서 원숭이들의 털 한 올까지 붓끝으로 살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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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 매달린 원숭이들을 확대해 보세요.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한 팔로 매달렸고, 그 아래 또 한 마리가 몸을 늘어뜨렸어요. 맨 아래 원숭이의 팔은 몸보다 길게 뚝 떨어져 내려와요. 둥근 얼굴 둘레의 하얀 털과 까만 코가 귀여우면서도 진지해 보여요.
그 팔 끝이 향하는 아래쪽을 보세요. 물결 위에 먹을 칠하지 않은 듯한 옅고 둥근 모양이 하나 남아 있어요. 동아시아 그림에는 원숭이들이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오래된 주제가 있어요. 이 둥근 모양이 무엇인지는 보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져 있어요.
왼쪽 끝 바위 위를 보세요. 원숭이 한 마리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다른 한 마리는 긴 팔을 바위 너머로 길게 걸쳤어요. 털은 짧은 붓질을 여러 번 겹쳐서 보송보송하게 그렸어요.
오른쪽에서는 한 마리가 한 팔로 바위에 매달린 채 다른 팔을 옆으로 쭉 뻗었어요. 몸은 공처럼 둥글게 말렸고, 얼굴은 우리를 똑바로 쳐다봐요. 매달린 팔은 털을 세로로 그어 길게 늘어난 느낌을 살렸어요.
아래쪽 물결로 내려가 보세요. 검은 바위 둘레로 물이 말려 올라가고, 거품이 구름 무늬처럼 가는 선으로 그려졌어요. 위쪽의 고요한 원숭이들과 달리 이곳은 소리가 들릴 듯 움직여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570년 무렵, 셋손은 이미 예순을 넘긴 승려였어요. 미술관은 그가 1504년 무렵 태어나 1589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고 적어요. 그는 교토에서 한참 떨어진 일본 동쪽 땅에서 평생 붓을 들었어요. 그 시절 일본은 영주들이 서로 땅을 다투던 전국 시대였어요.
셋손은 지금의 이바라키현인 히타치 지방에서, 그 땅을 다스리던 무사 집안 사타케 가문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칼 대신 붓을 쥔 선종 승려가 되었어요. 그 뒤 아이즈, 오다와라, 가마쿠라를 옮겨 다녔어요. 아이즈에서는 영주 아시나 모리우지의 후원을 받았고, 오다와라에서는 호조 가문 아래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늘그막에는 오늘날 후쿠시마현 미하루 가까이에 작은 암자를 짓고 살았어요. 그 땅의 다무라 가문이 그를 도왔어요. 지금 고리야마시에는 그 암자를 이은 곳으로 알려진 셋손안이 있어요.
일본에서는 그를 서쪽의 셋슈, 동쪽의 셋손이라고 짝지어 불러요. 셋슈는 셋손이 태어나던 무렵 세상을 떠난 수묵화의 큰 이름이에요. 두 이름 모두 눈을 뜻하는 글자 雪로 시작해요.
긴팔원숭이는 일본에 살지 않아요. 일본 선승들은 중국 송나라 승려 화가 목계의 원숭이 그림을 아꼈고, 15세기 말에는 이 주제가 큰 그림의 단골 주제가 되었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병풍을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줄줄이 매달린 원숭이들로 보고, 선종에서는 이것이 헛것을 좇는 마음을 뜻한다고 설명해요. 이 병풍 한 쌍은 1992년 여러 기금과 기부금으로 미술관에 왔어요.
가운데를 다시 보세요. 가지에서 이어진 원숭이의 긴 팔이 아래로, 물 위의 옅고 둥근 빛 쪽을 향해 있어요. 예순을 넘긴 승려 화가는 그 손끝과 둥근 빛 사이를 빈 종이로 남겨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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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이 병풍에서 원숭이는 모두 몇 마리이고, 저마다 무엇을 붙잡고 있나요?
- 왜일까셋손은 왜 원숭이 둘레를 빈 종이로 넓게 남겨 두었을까요?
- 나라면물에 비친 달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좇아 본 적이 있나요? 그때 멈춰야 했을까요, 계속 손을 뻗어야 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