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금박 바탕 위로 짙은 청록빛 파도가 솟구치며 하얀 물거품을 손가락처럼 내뻗는 바다를 그렸어요.
- 오가타 고린이 1704~1709년 무렵 종이에 먹과 색, 금박으로 그린 두 폭 병풍이에요.
- 배도, 해변도, 사람도 없어요. 높이 1.5미터 화면을 오직 파도 하나로 가득 채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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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위쪽 파도 끝을 확대해 보세요. 물마루가 부서지며 하얀 거품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는데, 갈래마다 끝이 동글게 말려 있어요. 꼭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손가락이나 짐승의 발톱처럼 보여요.
오른쪽 큰 파도의 몸통을 보세요. 휘어 오르는 물살을 가는 선 여러 줄이 나란히 따라가요. 선과 선 사이에 금빛 바탕이 비치면서 물이 빠르게 흘러가는 결이 느껴져요.
왼쪽 가운데로 가 보세요. 거품이 구름처럼 뭉쳐 소용돌이치고, 그 안에 짙은 물덩이가 둥글게 갇혀 있어요. 거품의 가장자리를 회색 선으로 몇 번 겹쳐 그어 부피를 만들었어요.
오른쪽 맨 아래를 보세요. 짙은 물 한가운데에 흰 동그라미 하나가 고리처럼 떠 있어요. 물보라 한 방울일까요, 거품일까요? 크고 거센 파도들 사이에서 이 작은 동그라미가 눈을 붙잡아요.
오른쪽 가장자리에 쓴 글씨와 둥근 도장을 보세요. 法橋光琳, 곧 법교 고린이라고 적었어요. 법교는 본래 승려에게 주던 지위였는데, 뒤에는 이름난 화가와 장인에게도 내려졌어요. 고린은 1701년에 이 칭호를 받았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704년 무렵, 마흔여섯 살의 고린은 교토를 떠나 에도로 갔어요. 그는 교토의 부유한 기모노 옷감 가게 가리가네야의 둘째 아들이었어요. 168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집안 재산은 고린과 동생 겐잔에게 넘어왔어요. 하지만 넉넉하던 살림은 오래가지 않았고, 고린은 새 일거리를 찾아 쇼군이 있는 도시로 떠났어요.
에도에서 고린을 도운 이들은 목재 상인 후유키 집안, 그리고 다이묘 사카이 집안이었어요. 그사이 동생 겐잔은 교토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뒷날 이름난 도예가가 되는 길을 걷고 있었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병풍을 고린이 에도에 머물던 1704~1709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봐요. 근거 가운데 하나가 도장이에요. 도장에 새긴 도스라는 이름을 고린이 1704년부터 썼거든요.
1709년 무렵 고린은 교토로 돌아와 겐잔과 다시 가까이 작업했고, 1716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고린은 앞 세대 화가 다와라야 소타쓰의 그림을 깊이 공부했고, 뒷날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서 이 화풍을 린파라고 불렀어요. 백 년쯤 뒤 에도의 화가 사카이 호이쓰는 고린의 그림에 빠져 1815년 고린의 백 주기를 기리는 행사를 열었어요. 이 병풍은 1926년 플레처 기금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이제 오른쪽 法橋光琳 글씨 아래의 둥근 도장을 다시 보세요. 에도에서 새로 쓰기 시작한 이름이 거기 찍혀 있어요. 그 옆에서 파도는 지금도 금빛 바탕 위로 손가락 같은 거품을 뻗고 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이 병풍에서 파도 끝이 손가락처럼 갈라진 곳을 몇 군데나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고린은 왜 하늘도 땅도 그리지 않고 파도만으로 화면을 채웠을까요?
- 나라면이 파도가 내 방 문 앞에 있다면 마음이 설렐까요, 무서울까요? 300년 전 사람들과 비교해 오늘 우리가 바다를 대하는 마음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