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Portrait에 그려진 얼굴

화가 · 19세기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 1819–1877

쥐라 산골 마을 오르낭의 이웃과 누이들, 골짜기를 커다란 화면에 그려 파리를 흔들고, 끝내 나라 밖에서 숨을 거둔 고집 센 사실주의 화가예요.

58살았던 해
19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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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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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44파리

    1844년 살롱에 쿠르베의 그림이 걸려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청년이 바위에 기대앉아 있고, 곁에 검은 개 한 마리가 앉아 있는 자화상이에요. 몇 해 동안 낸 그림이 번번이 떨어진 끝에, 처음으로 살롱이 받아 준 그림이었어요.

    그는 1819년 프랑스 동쪽 쥐라 산지의 작은 도시 오르낭에서 땅을 가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아들이 파리에서 법을 공부하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파리에 온 아들은 화가가 되기로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어요.

  2. 1849오르낭

    1849년 살롱에서 「오르낭의 저녁 식사 뒤」가 메달을 받아요. 오르낭에서 저녁을 먹고 난 남자들이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 그림이에요. 나라가 이 그림을 사들여 릴의 미술관으로 보냈어요. 메달 덕분에 쿠르베는 다음 살롱부터 심사를 거치지 않고 그림을 걸 수 있게 되었어요.

    그해 그는 오르낭으로 돌아가 「오르낭의 매장」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와서 모델이 되어 주었어요. 가로 6미터가 넘는 화면에 시골 장례식이 실물 크기로 들어섰고, 이 그림은 이듬해 말 파리 살롱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어요.

  3. 1852파리

    1852년 살롱에 「마을의 아가씨들」이 걸려요. 오르낭 근처 골짜기에서 차려입은 세 아가씨가 맨발로 소를 치는 소녀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그림이에요. 세 아가씨는 화가의 누이동생 젤리, 쥘리에트, 조에였어요.

    비평가들은 이 그림을 멋도 없고 서툴다고 몰아세웠어요. 누이들의 수수한 얼굴과 옷차림까지 놀림을 받았어요. 시골 처녀들을 점잖은 아가씨라는 뜻의 '드무아젤'이라고 부른 제목도 못마땅해했어요.

    이때 그린 그림마을의 아가씨들
  4. 1854몽펠리에

    1854년 5월, 쿠르베가 남프랑스 몽펠리에에 도착해요. 그의 그림을 사 준 부유한 수집가 알프레드 브뤼야스가 그를 초대했어요. 쿠르베는 여름 내내 그곳에 머물렀어요.

    이 여름에 그는 「만남」을 그렸어요. 화구를 등에 진 화가가 시골길에서 모자를 벗어 든 브뤼야스와 그의 하인을 만나는 장면이에요. 화가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어요. 브뤼야스는 이 그림을 남에게 잘 보여 주지 않다가 1868년 몽펠리에의 파브르 미술관에 기증했어요.

  5. 1855파리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려요. 쿠르베는 그림 여러 점을 냈지만, 「오르낭의 매장」과 새로 그린 거대한 「화가의 작업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는 박람회장 바로 근처에 제 돈으로 전시장을 짓고 '사실주의'라는 간판을 걸었어요. 그 안에 자기 그림 수십 점을 걸었어요.

    선배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이곳을 찾아와 「화가의 작업실」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그는 일기에 심사가 이 그림을 떨어뜨린 일을 아쉬워하는 말을 남겼어요.

    같은 해 쿠르베는 「그레구아르 아주머니」를 처음엔 여인의 얼굴 하나로 시작했어요. 몇 해 뒤 화면을 넓혀, 대리석 계산대 위에 동전과 장부가 놓인 장면으로 바꾸었어요. 여인은 한 손에 작은 꽃을 들고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그레구아르 아주머니
  6. 1866파리

    1866년 살롱에 「앵무새와 여인」이 걸려요. 두 해 전 살롱은 그의 누드화 「비너스와 프시케」를 점잖지 못하다며 받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받아들였어요.

    반응은 엇갈렸어요. 어떤 비평가는 화가에게 취향이 없다고, 모델의 자세가 볼품없고 머리가 흐트러졌다고 꾸짖었어요.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한때 이 그림을 사들일까 고민했어요. 결국 사지는 않았어요.

    이때 그린 그림앵무새와 여인
  7. 1871파리

    1871년 5월 16일, 방돔 광장에 서 있던 나폴레옹의 기념 기둥이 밧줄에 끌려 쓰러져요. 그 봄 파리에는 시민들이 세운 자치 정부, 파리 코뮌이 들어서 있었고, 쿠르베도 그 의원이었어요. 그는 앞서 이 기둥을 헐어 내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어요.

    코뮌이 무너진 뒤 그는 6월에 체포됐어요. 재판에서 감옥 여섯 달과 벌금 500프랑을 선고받았고, 파리의 생트펠라지 감옥에서 형을 살았어요.

  8. 1877라투르드펠즈

    쿠르베는 1873년 7월 스위스로 건너가 레만 호숫가 마을 라투르드펠즈에 살고 있었어요. 프랑스 법원은 그에게 무너진 기둥을 다시 세우는 비용 32만 프랑이 넘는 돈을 해마다 나눠 갚으라고 정했어요.

    1877년 12월 31일, 쿠르베는 라투르드펠즈에서 쉰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 뒤 그의 그림은 바다를 건넜어요. 「앵무새와 여인」은 1898년 뉴욕의 해브마이어 부부가 사들였고, 1929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함께한 사람들

  • 레지스 쿠르베아버지예요. 아들이 파리에서 법을 공부하기를 바랐어요.
  • 쥘리에트 쿠르베막내 누이동생으로, 「마을의 아가씨들」의 모델이 되어 준 세 누이 가운데 한 사람이에요.
  • 알프레드 브뤼야스몽펠리에의 수집가로, 쿠르베의 그림을 사고 1854년 그를 초대했어요.
  • 외젠 들라크루아선배 화가로, 1855년 사실주의 전시장을 찾아 「화가의 작업실」을 보고 일기에 남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