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Honoré Daumier에 그려진 얼굴

화가 · 19세기

오노레 도미에

Honoré Daumier · 1808–1879

신문에 실은 석판화로 왕과 권력자를 비꼬다 감옥까지 갔고, 기차 삼등 칸의 지친 사람들을 조용히 그린 파리의 화가예요.

71살았던 해
19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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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도미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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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16파리

    1816년 가을, 여덟 살 오노레가 마르세유에서 파리로 올라와요. 유리 끼우는 일을 하며 시를 쓰던 아버지가 시인으로 이름을 얻겠다며 먼저 파리로 떠났고, 가족이 뒤따라온 거예요. 하지만 이름은 나지 않았고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어요.

    열두 살 무렵 소년은 법원 집달관 사무실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했고, 그 뒤에는 책방에서 일했어요. 1822년 무렵 아버지의 친구인 화가 알렉상드르 르누아르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훗날 변호사와 판사는 그의 판화에 자주 나오는 주인공이 돼요.

  2. 1832파리

    1832년 2월, 젊은 도미에가 석판화 한 장 때문에 법정에 서요. 그림 이름은 「가르강튀아」예요. 국왕 루이 필리프를 옥좌에 앉은 뚱뚱한 거인으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돈 바구니가 비탈길을 따라 그 입으로 올라가게 그렸거든요.

    죄목은 정부를 미워하도록 부추기고 국왕을 모욕했다는 것, 벌은 징역 여섯 달이었어요. 그해 8월 말 그는 생트펠라지 감옥에 들어갔어요. 두 달 반쯤 뒤 의사 피넬의 요양원으로 옮겨져 남은 날을 보냈고, 1833년 2월에 풀려났어요. 그의 그림을 실은 발행인 샤를 필리퐁도 국왕 모욕죄로 같은 감옥에 갇혔어요.

  3. 1834파리

    1834년 4월, 봉기를 진압하던 군인들이 파리 트랑스노냉 거리의 한 건물에 들어가 주민들을 죽여요. 도미에는 그 뒤의 한 방을 석판화로 그렸어요. 잠옷 차림의 남자가 침대 곁 바닥에 쓰러져 있고, 그 몸 아래에 작은 아이가 깔려 있어요.

    이 판화가 베로도다 아케이드의 판화 가게 창에 걸리자 경찰이 찾아왔어요. 경찰은 찾을 수 있는 판화를 모두 거둬 갔고, 그림을 그린 석판 돌까지 가져갔어요. 이듬해 정치 풍자를 막는 법이 생기자, 도미에는 왕 대신 거리와 법정과 집 안의 보통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4. 1846파리

    서른여덟 살의 도미에가 젊은 재봉사 알렉상드린 다시와 결혼해요. 부부의 집과 작업실은 센강 한가운데 섬, 생루이섬의 앙주 강둑에 있었어요. 도미에는 1841년부터 1863년까지 이곳에서 살며 일했어요.

    강둑을 오가는 사람들, 강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도 그의 석판화에 들어갔어요.

  5. 1848파리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나 왕이 쫓겨나고 공화국이 선포돼요. 새 정부는 공화국을 나타낼 그림을 공모했고, 도미에도 응모했어요. 그의 작은 유화 밑그림에는 깃발을 쥔 굳센 여인이 앉아 두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발치에서 또 한 아이가 책을 읽어요.

    4월 초 에콜 데 보자르에 마지막 후보들의 밑그림이 걸렸고, 그 가운데 도미에의 그림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끝내 큰 그림을 완성하지 않았어요. 이 밑그림은 지금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어요.

  6. 1860파리

    1860년, 풍자 신문 르 샤리바리가 도미에와의 일을 끊어요. 1830년대부터 이 신문에 석판화를 그려 살아온 그에게는 생계가 걸린 일이었어요. 그는 몇 해 뒤에야 다시 이 신문에 그림을 실을 수 있었어요.

    그 사이 그는 유화에 더 매달렸어요. 「삼등 열차」는 1864년 그림이에요. 왼쪽의 젊은 엄마는 젖먹이를 안았고, 가운데 할머니는 무릎 위 바구니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쥐었어요. 오른쪽 소년은 고개를 떨군 채 잠들었어요. 살갗과 창문 위로 그림을 옮길 때 그은 가는 격자 선이 아직 비쳐요.

    이때 그린 그림삼등 열차
  7. 1874발몽두아

    도미에는 1860년대 중반부터 파리 북쪽 마을 발몽두아의 작은 집을 빌려 살았어요. 눈은 점점 나빠지고 돈은 모자랐어요. 1874년 2월, 그는 마침내 이 집을 사요. 집값 1만 3천 프랑 가운데 절반이 넘는 돈을 친구 화가 카미유 코로가 애써 마련해 주었어요.

    훗날 코로가 집을 사서 그냥 건네주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어요. 하지만 도미에가 직접 서명한 매매 증서가 지금도 남아 있어요.

  8. 1878파리

    1878년, 친구들이 파리 뒤랑뤼엘 화랑에서 도미에의 첫 개인전을 열어요. 작가 빅토르 위고가 전시의 위원장을 맡았어요. 하지만 전시는 실패로 끝났고, 눈이 거의 멀었던 도미에는 전시장에 가지도 못했어요. 여덟 해 전 정부가 주려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사양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는 1879년 2월 10일 발몽두아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처음에는 마을에 묻혔다가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로 옮겨져 코로와 도비니 곁에 누웠어요. 「삼등 열차」는 1929년 해브마이어 부인의 유증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함께한 사람들

  • 장바티스트 도미에아버지예요. 마르세유의 유리 끼우는 장인으로, 시인이 되려고 파리로 갔어요.
  • 알렉상드르 르누아르1822년 무렵 어린 도미에에게 그림을 가르친 아버지의 친구예요.
  • 샤를 필리퐁도미에의 석판화를 실은 풍자 신문의 발행인으로, 그도 국왕 모욕죄로 감옥에 갔어요.
  • 알렉상드린 다시1846년에 결혼한 아내로, 재봉사였어요.
  • 카미유 코로친구 화가로, 발몽두아 집값의 절반 넘게를 마련해 주었어요.

작품

평예재에 걸린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

이 화가의 그림은 더 모이는 대로 늘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