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Eugène Delacroix에 그려진 얼굴

화가 · 19세기

외젠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 1798–1863

소설과 시, 혁명의 거리, 모로코의 햇빛을 거침없는 색과 붓질로 옮기며 평생 일기를 쓴 파리의 화가예요.

65살았던 해
19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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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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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22파리

    1822년 봄, 스물네 살 들라크루아의 큰 그림이 살롱 전시장에 걸려요. 시인 단테와 안내자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의 강을 건너고, 물에 빠진 영혼들이 배에 매달리는 장면이에요. 몇 해 전 그는 선배 화가 제리코가 「메두사호의 뗏목」을 그릴 때 모델을 서 주기도 했어요.

    나폴레옹의 전쟁화를 그린 이름난 화가 그로가 이 그림을 보고 루벤스에 견주며 칭찬했어요. 그림은 그해 나라에 팔려 지금 루브르 박물관에 있어요. 신인 화가에게는 큰 출발이었어요.

  2. 1824파리

    1824년 6월, 들라크루아가 영국 화가 컨스터블의 풍경화 「건초 마차」를 보고 일기를 써요. 이 컨스터블이 자기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그림은 그해 파리 살롱에 걸릴 예정이었어요.

    들라크루아도 같은 살롱에 낼 큰 그림이 있었어요. 그리스의 키오스 섬에서 벌어진 학살을 그린 그림이었어요. 그는 살롱이 열리기 직전 이 그림에 다시 손을 대, 가는 붓질과 밝은 빛을 덧입혔어요. 같은 살롱에서 「건초 마차」는 프랑스 왕 샤를 10세의 금메달을 받았어요.

  3. 1825런던

    1825년 여름, 들라크루아가 바다를 건너 런던에 가요. 그곳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연극과, 괴테의 『파우스트』를 무대에 올린 공연을 봤어요. 파리로 돌아온 그는 『파우스트』 장면을 석판화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괴테는 그 판화를 보고, 자기가 상상한 장면을 넘어선 곳도 있다고 말했어요.

    1824년 그리스 독립 전쟁에 뛰어들었던 영국 시인 바이런이 세상을 떠났어요. 들라크루아는 1826년 바이런의 시 속 결투를 그렸어요. 말 탄 두 사내가 칼과 철퇴를 들고 맞부딪치고, 그 아래 한 사람이 땅을 짚고 쓰러져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기아우르와 하산의 결투
  4. 1830파리

    1830년 7월, 파리 거리에 바리케이드가 올라가요. 사흘 동안의 싸움 끝에 왕 샤를 10세가 물러났어요. 그해 10월 들라크루아는 군인이었던 형 샤를에게 편지를 써, 현대의 주제인 바리케이드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알렸어요.

    그렇게 나온 그림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에요. 이듬해 살롱에 걸렸고, 새 정부가 사들였어요. 그러나 그림은 오래 걸리지 못하고 곧 사람들 눈에서 치워졌어요.

  5. 1832탕헤르

    1832년 1월, 들라크루아가 모르네 백작이 이끄는 프랑스 외교 사절단과 함께 모로코 탕헤르에 내려요. 사절단의 통역은 프랑스 영사관에서 일하던 유대인 아브라함 벤시몰이었어요. 벤시몰은 이 화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아내와 딸들을 만나게 해 주었어요.

    2월 21일에는 탕헤르의 유대인 결혼식에도 가서, 본 것을 일기에 아주 자세히 적었어요. 「아브라함 벤시몰의 아내 사아다와 딸 프레시아다」에서는 신부 옷을 차려입은 딸이 높은 머리 장식과 붉은 구슬 목걸이를 하고 앉아 있어요. 노란 숄을 두른 어머니가 그 뒤에서 몸을 숙이고 딸을 내려다봐요.

    이때 그린 그림아브라함 벤시몰의 아내 사아다와 딸 프레시아다
  6. 1838파리

    1838년, 들라크루아가 친구 쇼팽과 소설가 조르주 상드를 한 화폭에 그려요. 쇼팽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고, 상드는 그 곁에서 음악을 들어요. 들라크루아는 그 뒤로도 상드의 시골집 노앙에 머물며 두 사람과 지냈어요.

    이 그림은 끝내 마무리되지 않은 채 그의 작업실에 남았어요. 그가 죽은 뒤 누군가 그림을 둘로 잘라 따로 팔았어요. 지금 쇼팽의 얼굴은 파리 루브르에, 상드의 모습은 덴마크의 미술관에 있어요.

  7. 1846파리

    1846년 살롱에 들라크루아의 새 그림 「레베카의 납치」가 걸려요. 월터 스콧의 소설 『아이반호』에서 불타는 성 앞으로 레베카가 끌려가는 장면이에요. 스물다섯 살의 시인 보들레르는 그해 살롱 평에서 들라크루아에게 한 장을 통째로 바쳤어요.

    그는 이 무렵 몇 해째 파리 국회 건물 도서관의 천장 그림에도 매달려 있었어요. 이듬해인 1847년 1월, 오래 멈췄던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이 일기는 죽기 직전까지 이어졌어요.

    이때 그린 그림레베카의 납치
  8. 1863파리

    1863년 8월 13일, 들라크루아가 파리 퓌르스텐베르크 거리의 집에서 숨을 거둬요. 곁에는 오래 집안일을 맡아 온 제니 르 길루가 있었어요. 그는 1857년 1월, 일곱 번째 도전 끝에 미술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어요.

    그해 12월 이 집으로 옮긴 것도 가까운 생쉴피스 성당의 벽화를 끝내기 위해서였어요. 그 벽에는 지금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이 남아 있어요. 집과 작업실은 들라크루아 미술관이 되었어요.

남긴 말

J'ai entrepris un sujet moderne, une barricade, et si je n'ai pas vaincu pour la patrie, au moins peindrai-je pour elle.

나는 현대의 주제, 바리케이드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조국을 위해 싸워 이기지는 못했어도, 적어도 조국을 위해 그림은 그리려고 해요. (1830년 10월, 형에게 쓴 편지)

함께한 사람들

  • 테오도르 제리코선배 화가로, 들라크루아가 「메두사호의 뗏목」 모델을 서 주었어요.
  • 샤를앙리 들라크루아군인이었던 형으로, 바리케이드 그림을 그린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 아브라함 벤시몰탕헤르 프랑스 영사관의 통역으로, 화가를 자기 가족에게 데려갔어요.
  • 프레데리크 쇼팽가까운 친구로, 들라크루아가 피아노 앞의 모습을 그렸어요.
  • 샤를 보들레르1846년 살롱 평에서 들라크루아를 길게 다룬 시인이에요.
  • 제니 르 길루오래 집안일을 맡았고, 마지막 순간을 지킨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