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9세기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 1780–1867
스스로는 역사화가라고 믿었지만, 연필 한 자루와 매끈한 붓질로 남긴 초상으로 더 오래 기억되는 프랑스 화가예요.
생애 장면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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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4 무렵툴루즈
툴루즈 카피톨 극장의 오케스트라석에 열서너 살 소년이 앉아 있어요. 소년의 자리는 제2바이올린이에요. 앵그르는 열세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이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켰어요.
그는 1780년 몽토방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그림과 조각, 음악을 두루 하던 사람이었고, 아들에게 그림과 바이올린을 함께 가르쳤어요. 앵그르는 평생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프랑스 말로 「앵그르의 바이올린」은 본업 말고 아끼는 취미를 뜻하게 되었어요.
- 1806파리
스물여섯 살 앵그르는 다섯 해째 떠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다비드의 화실에서 배운 그는 1801년, 젊은 화가들의 큰 상인 로마상을 받았어요. 상을 받으면 로마로 유학을 가야 하는데, 나라에 돈이 없어서 여비가 1806년에야 나왔어요.
그해 그는 쥘리 포레스티에와 약혼했어요. 그리고 그해 가을 혼자 로마로 떠났어요. 파리 살롱에 걸린 그의 「옥좌의 나폴레옹」은 낡고 이상하다는 혹평을 받았어요. 로마에서 그는 쥘리에게 1806년 10월 19일 자 편지를 보냈어요. 아홉 달쯤 뒤 그는 파리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약혼을 깼어요.
- 1813로마
서른세 살 앵그르가 로마에서 결혼해요. 신부 마들렌 샤펠은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온 여인이었어요. 두 사람은 친구들의 소개로 편지만 주고받았고, 앵그르는 얼굴도 보기 전에 청혼했어요. 마들렌은 로마로 와서 그 청혼을 받아들였어요.
그 무렵 로마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다스렸어요. 앵그르는 로마에 와 있던 프랑스 관리들의 초상을 그리며 살림을 꾸렸어요. 「조제프앙투안 몰테도」의 주인공도 로마 우체국을 맡은 코르시카 사람이었어요. 남자 뒤로 콜로세움이 보여요.
이때 그린 그림조제프앙투안 몰테도 - 1824파리
열여덟 해 동안 이탈리아에 머문 앵그르가 마흔네 살에 파리로 돌아와요. 그해 살롱에 고향 몽토방 대성당을 위해 그린 「루이 13세의 서원」을 걸었어요. 그림은 큰 환영을 받았어요.
같은 살롱에는 젊은 들라크루아의 「키오스섬의 학살」도 걸렸어요. 사람들은 선을 앞세우는 앵그르와 색을 앞세우는 들라크루아를 두 편의 대장처럼 견주기 시작했어요. 이듬해 1월 앵그르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같은 해 미술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어요.
- 1834파리
여러 해를 매달린 큰 그림 「성 생포리앵의 순교」가 살롱에 걸려요. 앵그르는 이 그림을 자기 대표작으로 내놓으려 했어요. 그런데 비평가들의 공격이 쏟아졌어요.
상처받은 앵그르는 다시는 살롱에 그림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리고 로마에 있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원장 자리를 맡아 다시 로마로 떠났어요. 젊은 날 장학생으로 머물던 바로 그 학교였어요. 그는 1841년까지 그곳을 이끌었어요.
- 1852파리
1849년 여름, 서른여섯 해를 함께한 마들렌이 세상을 떠났어요. 앵그르는 깊은 슬픔에 빠졌어요. 세 해 뒤인 1852년, 일흔한 살의 앵그르는 델핀 라멜과 다시 결혼했어요.
델핀은 오랜 친구 샤를 마르코트의 조카딸이었어요. 결혼과 함께 새 친척들이 생겼고, 앵그르는 그들에게 연필 초상을 그려 건넸어요. 「펠릭스 갈루아 부인」도 그해 그린 그림이에요. 주인공은 델핀의 사촌이에요.
이때 그린 그림펠릭스 갈루아 부인 - 1853파리
젊은 귀족 알베르 드 브로이가 앵그르를 찾아와 아내의 초상을 부탁했어요. 앵그르는 몇 해 전 알베르의 누이 오송빌 백작 부인을 그렸어요. 그 초상이 크게 호평을 받았거든요.
초상 주문이 시간을 빼앗는다고 투덜대던 앵그르였지만, 이 그림은 1853년에 마무리했어요. 같은 해 그는 파리 시청 천장에 나폴레옹을 기리는 큰 그림도 그렸어요. 이 천장화는 1871년 시청이 불탈 때 사라졌어요.
이때 그린 그림브로이 공주 - 1867파리
1867년 1월 14일, 앵그르가 파리 볼테르 강변의 집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요. 여든여섯 살이었어요.
그가 남긴 소묘 수천 장과 그림, 손때 묻은 물건들은 고향 몽토방으로 갔어요. 그중에는 그가 아끼던 낡은 바이올린도 있었어요. 지금 몽토방의 앵그르 부르델 미술관에 가면 그 바이올린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그가 친척과 귀족에게 건넨 초상들은 바다를 건너 뉴욕에 와 있어요.
같은 시대를 산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