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8세기
조슈아 레이놀즈
Sir Joshua Reynolds · 1723–1792
데번의 시골 학교 교장 아들로 태어나, 런던에서 초상화에 옛 거장의 품위를 입히고 왕립 미술원의 첫 원장이 된 화가예요.
생애 장면
조슈아 레이놀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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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0런던
십대 소년 하나가 데번에서 런던으로 올라와요. 플림턴 문법 학교 교장 새뮤얼 레이놀즈의 아들 조슈아예요. 아버지는 아들을 같은 데번 출신 초상화가 토머스 허드슨에게 맡겼어요. 보통 도제는 7년인데, 이번 약속은 4년이었어요.
조슈아는 그 4년을 다 채우지 못했어요. 1743년 여름, 스승이 시킨 심부름 하나를 두고 둘이 틀어졌어요. 조슈아는 그대로 허드슨의 화실을 나와 데번으로 돌아가 혼자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 1749미노르카와 로마
플리머스 항구에 군함 센추리언호가 들어와요. 함장은 스물네 살의 오거스터스 케펄이었어요. 그는 지중해로 가는 길에 젊은 화가를 태워 주겠다고 했어요. 레이놀즈는 미노르카섬의 포트 마혼에 몇 달 머물며 장교들의 초상화를 그린 뒤 로마로 갔어요.
로마에서는 스승을 따로 두지 않고 바티칸에서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베꼈어요. 그런데 바티칸의 방에서 그림을 베끼다가 지독한 감기가 들었어요. 감기는 나았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었고, 그 뒤로 평생 귀에 대는 나팔을 들고 다녔어요. 그는 약 2년 뒤인 1752년 피렌체와 베네치아, 파리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왔어요.
- 1764런던
1764년 2월, 런던 소호의 제라드 거리에 있는 선술집 터키스 헤드에 남자 몇이 모여 저녁을 먹어요. 레이놀즈와 사전을 만든 문인 새뮤얼 존슨이 함께 만든 모임, 더 클럽의 첫 모임들이에요.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와 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도 회원이었어요.
이 무렵 레이놀즈는 찰스 번버리의 아내 세라를 그리고 있었어요. 그림 속 세라는 연분홍빛 비단 옷을 입고 제단 위로 둥근 금빛 접시를 내밀어요. 레이놀즈는 1765년 이 전신 초상화를 전시에 내놓았어요. 왼쪽 위 받침 위에서는 세 여신 조각상이 서로 어깨를 감싸고 서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삼미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세라 번버리 부인 - 1769런던
1769년 1월 2일,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왕립 미술원에서 원장 레이놀즈가 학생들 앞에 서요. 미술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첫 강연이었어요. 그는 이렇게 시작한 강연을 1790년까지 열다섯 번 이어 갔고, 강연은 「담론」이라는 책으로 묶였어요.
석 달 뒤인 4월 21일, 국왕 조지 3세가 세인트 제임스 궁에서 그에게 기사 작위를 주었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조슈아 경이라고 불렀어요. 닷새 뒤 펠멜 거리에서 미술원의 첫 전시가 열렸어요.
- 1782런던
1782년 2월 9일, 젊은 근위대 장교 조지 쿠스메이커가 레이놀즈의 화실에 처음 앉아요. 레이놀즈의 약속 수첩에는 그가 4월 16일까지 스물한 번 왔다고 적혀 있어요. 그의 말도 따로 화실에 불려 왔어요.
완성된 그림을 보면 붉은 군복의 장교가 다리를 꼬고 나무줄기에 기대 서 있어요. 그 옆에서 이마에 흰 줄이 난 갈색 말이 고개를 땅 가까이 숙이고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조지 쿠스메이커 대위 - 1784런던
배우 세라 시든스가 레이놀즈의 화실에서 비극의 여신 차림으로 앉아요. 그해 완성된 그림 「비극의 뮤즈로 분한 시든스 부인」에서 화가는 자기 이름을 그녀의 치맛단에 써넣었어요. 시든스는 뒤에, 화가가 그녀의 옷자락에 실려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영광을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고 기억했어요.
같은 해 궁정화가 앨런 램지가 세상을 떠났고, 레이놀즈가 국왕의 수석 궁정화가 자리를 이어받았어요.
- 1789런던
1789년 7월 13일, 레이놀즈는 약속 수첩에 눈이 흐려지기 시작해 그림을 못 그렸다고 적어요. 열 주쯤 지나 왼쪽 눈이 아주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그는 그리던 그림에 조금씩 손을 댔을 뿐, 새 그림은 더 시작하지 않았어요.
이듬해 2월, 미술원 총회가 그가 밀던 건축가 조지프 보노미를 받아들이지 않자 레이놀즈는 원장 자리를 내놓았어요. 그러다 3월에 다시 원장 자리로 돌아왔어요.
- 1792런던
1792년 2월 23일, 레이놀즈는 레스터 필즈의 집에서 예순여덟 살로 세상을 떠나요. 유언 집행은 친구 에드먼드 버크 등이 맡았어요. 3월 3일, 관은 왕립 미술원에서 세인트폴 대성당으로 옮겨졌고, 공작 셋과 후작 둘을 포함한 귀족 열 명이 관포 자락을 들었어요. 그는 대성당 지하에 묻혔어요.
그가 그린 숲속의 젊은 장교는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제단 앞의 세라는 시카고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새뮤얼 레이놀즈아버지예요. 플림턴 문법 학교 교장으로, 아들을 런던의 허드슨에게 보냈어요.
- 토머스 허드슨같은 데번 출신 초상화가로, 젊은 레이놀즈를 도제로 받은 스승이에요.
- 오거스터스 케펄해군 장교로, 1749년 자기 군함에 레이놀즈를 태워 지중해로 데려갔어요.
- 새뮤얼 존슨문인으로, 레이놀즈와 함께 더 클럽을 만든 오랜 친구예요.
- 에드먼드 버크정치가로, 더 클럽의 회원이었고 레이놀즈가 죽은 뒤 유언 집행을 맡았어요.
- 세라 시든스배우로, 1784년 비극의 뮤즈 모습으로 레이놀즈 앞에 앉았어요.
같은 시대를 산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