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8세기
토머스 게인즈버러
Thomas Gainsborough · 1727–1788
서퍽의 작은 마을에서 나와 왕과 왕비를 그린 초상화가가 되었지만, 끝까지 시골 숲과 길과 아이들을 그리고 싶어 한 영국 화가예요.
생애 장면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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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0서드버리에서 런던으로
열세 살 소년 토머스가 아버지를 졸라요. 런던에 가서 그림을 배우게 해 달라고요. 아버지 존은 서퍽 서드버리에서 모직 옷감을 다루던 사람이었고, 토머스는 아홉 남매 가운데 하나였어요. 1740년 무렵,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런던으로 보냈어요.
런던에서 소년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판화가 위베르프랑수아 그라블로 곁에서 일을 익혔어요. 이 무렵의 기록은 많지 않아요. 그래도 고향 들판에서 나무와 언덕을 따라 그리던 소년이, 큰 도시의 판화 작업실에서 섬세한 선을 배운 것만은 분명해요.
- 1746런던
1746년 7월, 열아홉 살의 게인즈버러가 런던 메이페어의 작은 예배당에서 결혼해요. 신부는 마거릿 버였어요. 마거릿에게는 해마다 200파운드씩 들어오는 연금이 있었는데, 보퍼트 공작이 준 돈이었어요. 그래서 그녀가 공작의 숨은 딸이었다는 말이 오래 따라다녔어요.
젊은 화가에게 이 연금은 큰 버팀목이었어요. 부부는 얼마 뒤 고향 서퍽으로 돌아갔고, 1752년에는 항구 도시 입스위치에 자리를 잡았어요. 두 딸 메리와 마거릿도 서퍽에서 자랐어요.
- 1759바스
입스위치 앞바다의 랜드가드 요새를 지키던 필립 시크니스가 젊은 화가를 눈여겨봐요. 그는 요새 풍경을 주문했고, 게인즈버러에게 온천 도시 바스로 가 보라고 부추겼어요. 1759년 게인즈버러 가족은 바스로 옮겼어요. 휴양하러 온 부자와 귀족이 많은 그곳에서,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손님이 금세 몰려들었어요.
1760년에는 음악가 앤 포드를 그렸어요. 그녀는 뒤에 시크니스의 아내가 되었어요. 게인즈버러 자신도 음악을 무척 좋아해 비올라 다 감바를 켰고, 음악가 친구가 많았어요. 시크니스는 화가가 세상을 떠난 해에 그의 첫 전기를 펴냈어요.
- 1774런던 팰맬
1768년 런던에 왕립 아카데미가 생길 때, 바스에 살던 게인즈버러도 창립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어요. 1774년 그는 마침내 가족을 데리고 런던으로 옮겨요. 새 집은 팰맬 거리의 큰 저택 숌버그 하우스의 한쪽이었어요.
그는 이 거리에서 남은 평생을 살았어요. 아카데미 회장 조슈아 레이놀즈와는 이때부터 런던 초상화 손님을 두고 겨루는 맞수가 되었어요.
- 1782윈저
1782년 9월, 게인즈버러가 윈저 성에 들어가 왕실 가족을 차례로 그려요. 조지 3세, 샬럿 왕비, 그리고 열세 명의 왕자와 공주를 하나씩, 가슴까지 오는 작은 타원형 초상 열다섯 점으로 담았어요. 이 그림들은 이듬해 왕립 아카데미 전시에 나란히 걸렸어요. 바로 한 해 전에는 왕과 왕비의 전신 초상도 아카데미에 냈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샬럿 왕비」는 이때 윈저에서 그린 왕비의 얼굴을 화가가 직접 다시 그린 그림이에요. 레이스 모자 아래 분 바른 머리가 부풀어 있어요. 목에는 진주 줄이 감겼고, 검은 레이스 숄이 하얀 가슴께를 감싸요. 왕비는 옆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샬럿 왕비 - 1783호수 지방
1783년, 쉰여섯의 게인즈버러가 입스위치 시절 친구 새뮤얼 킬더비와 함께 잉글랜드 북쪽 호수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요. 높은 산과 호수가 이어지는 이 지방은 그에게 새 풍경이었어요. 돌아온 뒤 그의 풍경화에는 산이 더 자주 솟아올랐어요.
「숲이 우거진 고지대 풍경」도 아마 이해에 그린 그림이에요. 레이놀즈는 게인즈버러가 탁자 위에 깨진 돌, 마른 풀, 거울 조각을 놓고 작은 풍경 모형을 만들었다고 말했어요. 가운데 길을 보세요. 등에 짐을 진 사람이 개와 함께 걸어가고, 그 뒤로 낡은 탑과 오두막, 먼 산이 겹겹이 서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숲이 우거진 고지대 풍경 - 1784런던 팰맬
왕립 아카데미 전시를 앞두고 게인즈버러가 그림 거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요. 세 공주를 그린 단체 초상화를 눈높이 가까이, 바닥에서 5피트 반이 넘지 않게 걸어 달라는 부탁이었어요.
아카데미는 그림을 정해진 높은 줄 위에 걸겠다고 했어요. 게인즈버러는 그 그림과 함께 그해 낸 그림을 모두 거둬 갔어요. 그 뒤로 그는 다시는 아카데미 전시에 그림을 내지 않았어요. 대신 숌버그 하우스 작업실에서 손님들에게 직접 그림을 보여 주었어요.
- 1788런던과 큐
1788년, 게인즈버러의 목에 생긴 혹이 암으로 드러나요. 병이 깊어지자 그는 오랜 맞수 레이놀즈를 불러 달라고 청했고, 레이놀즈가 그의 곁을 찾아왔어요.
8월 2일, 게인즈버러는 예순한 살로 세상을 떠나요. 그는 큐 교회 묘지의 오랜 친구 조슈아 커비 곁에 묻혔어요. 그해 12월, 레이놀즈는 아카데미 강연에서 그를 기리는 이야기를 길게 했어요. 이제 한 해 전인 1787년에 그린 「오두막의 아이들」 속 소녀를 보세요. 아기를 안은 시골 소녀가 큰 캔버스에서 우리를 똑바로 바라봐요.
이때 그린 그림오두막의 아이들 (나무 줍는 아이들)
함께한 사람들
- 마거릿 버1746년에 결혼한 아내로, 그녀의 연금이 젊은 화가 집안의 버팀목이 되었어요.
- 위베르프랑수아 그라블로소년 게인즈버러가 런던에서 곁에서 일을 익힌 프랑스 출신 판화가예요.
- 필립 시크니스랜드가드 요새의 부총독으로, 화가를 바스로 이끌고 첫 전기를 쓴 사람이에요.
- 새뮤얼 킬더비입스위치 시절부터의 친구로, 1783년 호수 지방 여행을 함께했어요.
- 조슈아 레이놀즈왕립 아카데미 회장이자 오랜 맞수로, 마지막에 그를 찾아와 작별했어요.
- 조슈아 커비서퍽 시절의 친구로, 게인즈버러는 큐에서 그의 곁에 묻혔어요.
같은 시대를 산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