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Leonardo da Vinci, from "Characaturas by Leonardo da Vinci, from Drawings by Wincelslaus Hollar, out of the Portland Museum"에 그려진 얼굴

화가 ·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 1452–1519

피렌체 공방에서 자라 밀라노와 로마를 거쳐 프랑스에서 눈을 감기까지, 곰의 발톱부터 성모의 숙인 얼굴까지 들여다보고 종이에 남긴 화가예요.

67살았던 해
15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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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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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52빈치

    할아버지 안토니오가 오래된 공증 장부의 마지막 쪽을 펼쳐 한 줄을 적어요. 아들 피에로에게 손자가 태어났다고요. 4월 15일 토요일, 해가 진 뒤 셋째 시간이었고, 이름은 레오나르도라고 적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밤 10시쯤이에요.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세례를 준 신부의 이름도 함께 남겼어요. 아버지 피에로는 공증인이었고, 엄마 카테리나와는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어요. 이 짧은 메모 덕분에 우리는 오백 년도 더 지난 그날 밤을 알아요.

  2. 1476피렌체

    1476년 4월, 피렌체의 익명 고발함에 이름 없는 쪽지가 들어가요. 몇몇 젊은이를 동성 간 관계로 고발하는 글이었고, 그 명단에 레오나르도가 있었어요. 쪽지에는 그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집에 산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는 이미 1472년에 피렌체 화가들의 모임인 성 루카 조합에 이름을 올렸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스승 베로키오의 공방에 머물던 때예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고발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두 달쯤 뒤 그는 다시 고발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혐의를 벗었어요.

  3. 1482 무렵밀라노

    서른 살 무렵,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를 다스리던 루도비코 스포르차에게 보낼 편지를 써요. 그 초안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편지 대부분은 그림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들고 옮기는 다리, 성을 무너뜨리는 방법, 대포, 덮개를 씌운 전차 같은 전쟁 기술을 하나씩 늘어놓았지요.

    그림과 조각은 편지 끝에야 나와요. 스포르차 집안을 기릴 청동 말도 만들 수 있다고 적었어요. 그리고 그는 밀라노로 가서 오래 머물렀어요.

    「걷는 곰」은 1482~85년 무렵의 손바닥만 한 은필 그림이에요. 곰이 왼쪽을 보며 앞발 하나를 들고 걸어요. 왼쪽 아래에는 휜 발톱이 달린 큰 발이 따로 하나 더 그려져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걷는 곰
  4. 1490밀라노

    1490년 7월 22일, 열 살 소년 자코모가 레오나르도의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해요. 레오나르도는 노트에 그날을 적고, 소년이 벌인 일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어요. 옷을 지어 주려고 따로 둔 돈이 사라졌고, 제자 조반니 안토니오가 그림 위에 올려 둔 은필도 없어졌다고요.

    그 목록 옆에 레오나르도는 소년을 도둑, 거짓말쟁이, 고집쟁이, 먹보라고 적었어요. 그래도 내보내지 않았어요. 소년은 살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그 뒤로 오래 레오나르도 곁에 머물렀어요.

  5. 1499밀라노

    1493년, 밀라노 사람들이 커다란 흙 말 앞에 모여요. 루도비코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를 기릴 기마상을 위해, 레오나르도가 동상 크기 그대로 흙으로 빚은 본이었어요. 이제 청동만 부으면 되었어요. 그런데 1494년, 루도비코는 모아 둔 청동을 페라라의 에르콜레 데스테에게 보내 대포를 만들게 했어요. 프랑스 군대가 이탈리아로 내려오던 때였어요.

    1499년, 바로 그 프랑스 군대가 밀라노를 차지해요. 궁수들이 흙 말을 과녁으로 삼았고, 말은 끝내 부서졌어요. 레오나르도도 그해 밀라노를 떠났어요.

  6. 1513밀라노

    1513년 9월 24일, 레오나르도는 노트에 짧게 적어요. 밀라노를 떠나 로마로 간다고, 프란체스코 멜치와 살라이 등 여럿이 함께라고요. 로마에서는 교황 레오 10세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그를 돌봐 주었어요. 멜치는 밀라노 귀족 집안의 젊은이로, 몇 해 전부터 그의 곁에서 그림을 배우던 제자였어요.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그는 성 안나와 성모와 아기 예수를 그린 그림을 붙들고 있었어요. 「오른쪽을 향한 성모의 머리」는 1510~13년에 그린, 지금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그 그림의 성모와 이어진 습작이에요. 고개를 깊이 숙이고 눈을 내리뜬 얼굴에 검은 분필을 문질러 부드러운 그늘을 만들었어요. 오른쪽으로는 곱슬머리가 물결처럼 흘러내려요.

    이때 그린 그림오른쪽을 향한 성모의 머리
  7. 1517앙부아즈

    1517년 10월 10일, 아라곤의 루이지 추기경 일행이 앙부아즈 가까이 클루의 집으로 레오나르도를 찾아와요. 그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부름을 받아 1516년에 알프스를 넘어와 있었어요. 추기경의 비서 안토니오 데 베아티스가 그날 본 것을 여행 일기에 적었어요.

    레오나르도는 그림 세 점을 보여 주었어요. 피렌체 여인의 초상, 젊은 세례 요한, 그리고 성 안나의 무릎에 앉은 성모와 아기 예수였어요. 베아티스는 그의 오른손이 마비되어 이제 붓으로 큰일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적었어요.

  8. 1519앙부아즈

    1519년 4월 23일, 레오나르도는 공증인 앞에서 유언장을 만들어요. 책과 그림 그리는 데 쓰던 도구들은 모두 프란체스코 멜치에게 남겼어요. 밀라노 바깥의 정원은 반으로 나누어 하인 바티스타 데 빌라니스와 살라이에게 주었어요.

    5월 2일, 그는 클루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바사리는 그가 프랑수아 1세의 품에서 숨졌다고 썼지만,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해요. 멜치는 노트와 그림을 이탈리아로 가져가 간직했고, 그 종이들은 훗날 여러 손을 거쳐 흩어졌어요. 이 사이트의 곰과 성모의 머리도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세르 피에로 다 빈치아버지예요. 피렌체에서 일한 공증인이었어요.
  •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피렌체에서 공방을 꾸린 스승이에요.
  • 루도비코 스포르차밀라노의 군주로, 레오나르도가 오래 그를 위해 일했어요.
  • 살라이열 살에 집에 들어와 오래 곁에 머문 제자예요.
  • 프란체스코 멜치밀라노 귀족 출신 제자로, 노트와 그림을 물려받았어요.
  • 프랑수아 1세레오나르도를 프랑스로 부른 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