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남은 그림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대신 이 화가의 다른 그림들

화가 · 15세기

페트뤼스 크리스튀스

Petrus Christus · 1444–1476

얀 반 에이크가 세상을 떠난 뒤 브뤼허에 자리 잡고, 그림마다 자기 이름과 해를 또박또박 적어 남긴 15세기 플랑드르 화가예요.

32살았던 해
15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글자 크기

페트뤼스 크리스튀스의 삶,
장면으로 따라가기

  1. 1444브뤼허

    1444년 7월 6일, 브뤼허 시민 장부에 한 남자의 이름이 올라가요. 돈을 내고 이 도시의 시민권을 산 페트뤼스 크리스튀스예요. 기록에는 그가 바를러 출신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가 이 날짜보다 앞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브뤼허 밖에서 온 화가가 이 도시에서 일하려면 시민권이 있어야 했어요. 이 도시의 이름난 화가 얀 반 에이크가 세상을 떠난 지 꼭 세 해가 지난 때였어요.

  2. 1446브뤼허

    1446년, 잉글랜드 왕 헨리 6세의 사절 에드워드 그림스턴이 바다를 건너와요. 그는 이해에 칼레와 브뤼셀을 오가며 외교 일을 했어요. 그리고 크리스튀스에게 자기 초상을 맡겼어요. 그림 속에는 잉글랜드 왕을 섬기는 사람의 표시인 목걸이가 함께 그려져 있어요.

    이 초상은 지금도 그림스턴의 후손 집안 것이고, 1927년부터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맡겨져 있어요. 같은 해 크리스튀스는 붉은 벽 앞에 선 카르투시오회 수도사의 초상도 그리고, 그림 아래에 자기 이름과 1446년을 적었어요.

    이때 그린 그림카르투시오회 수도사의 초상
  3. 1449브뤼허

    세 해 뒤 크리스튀스는 금세공인의 가게를 그려요. 반지 무게를 다는 장인 곁에 젊은 남녀가 서 있고, 계산대 위 볼록거울에는 바깥 거리가 비쳐요. 그는 이 그림에도 이름과 1449년을 또렷이 적었어요.

    마침 이해에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선량공은 브뤼허의 금세공인 빌럼 판 플뢰턴에게 선물을 주문했어요. 겔더른의 마리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와 혼인할 때 보낼 선물이었어요. 그림 속 장인을 이 사람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가게 안의 금세공인
  4. 1454브뤼허

    1454년, 크리스튀스에게 특별한 주문이 들어와요. 에탕프 백작이 캉브레 대성당의 성모 그림을 똑같이 세 점 그려 달라고 한 거예요. 그 성모 그림은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어지던 그림이었어요.

    이름난 성모 그림을 그대로 옮겨 그려 달라는 주문이 브뤼허의 크리스튀스에게 온 거예요. 안타깝게도 크리스튀스가 그린 세 점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5. 1463브뤼허

    1462년 무렵, 크리스튀스와 아내 고디신은 브뤼허의 「마른 나무의 성모」 형제회에 함께 이름을 올려요. 이 형제회에는 부르고뉴 공작 부인 포르투갈의 이사벨도 회원으로 있었어요. 브뤼허의 이름난 사람들이 모인 신심 모임이었어요.

    1463년에는 브뤼허 시가 그에게 일을 맡겼어요. 화가 피터르 나흐테할러와 함께 큰 무대 장식 두 개를 만드는 일을 감독하는 것이었어요. 이제 그는 도시가 믿고 일을 맡기는 화가였어요.

  6. 1476브뤼허

    크리스튀스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형제회의 장부가 알려 줘요. 1475년 9월 2일부터 1476년 12월 19일 사이, 장부에 그의 죽음이 기록되었어요. 정확한 날짜는 남아 있지 않아요.

    그는 여러 그림에 이름과 해를 적어 두었어요. 그 글씨 덕분에 지금 우리는 1446년의 수도사와 1449년의 금세공인을 그의 그림으로 알아볼 수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고디신아내예요. 함께 「마른 나무의 성모」 형제회에 들었어요.
  • 에드워드 그림스턴1446년에 크리스튀스에게 초상을 맡긴 잉글랜드 사절이에요.
  • 에탕프 백작1454년에 캉브레 성모 그림의 사본 세 점을 주문한 사람이에요.
  • 피터르 나흐테할러1463년 브뤼허 시의 일을 함께 맡은 화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