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7세기
피터르 더 호흐
Pieter de Hooch · 1629–1684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델프트와 암스테르담 집 안의 햇빛, 열린 문, 그 너머의 또 다른 방을 그린 네덜란드 화가예요.
생애 장면
피터르 더 호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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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9로테르담
1629년 12월 20일, 로테르담의 개혁교회에서 한 아기가 세례를 받아요. 이름은 피터르예요. 아버지 헨드릭은 벽돌을 쌓는 장인이었고, 어머니 안헤 피터르스는 아기를 받는 산파였어요. 집을 짓는 아버지와 사람이 태어나는 방을 드나드는 어머니. 그가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는 한 사람의 기록에만 남아 있어요. 18세기 초 화가 전기를 쓴 아르놀트 하우브라컨은, 더 호흐가 풍경화가 니콜라스 베르헴에게 배웠고 같은 로테르담 출신 야코프 오흐테르펠트도 함께 배웠다고 적었어요. 다만 베르헴의 이탈리아풍 풍경과 더 호흐의 그림은 너무 달라서, 지금 학자들은 이 기록을 조심스럽게 봐요.
- 1652델프트
1652년 8월 5일, 델프트에서 누군가 유언장에 서명해요. 그 자리에 증인으로 이름을 올린 두 사람이 화가 피터르 더 호흐와 헨드릭 판 데르 뷔르흐예요. 이것이 델프트에 남은 더 호흐의 첫 기록이에요.
두 해 뒤 더 호흐가 결혼한 여인이 판 데르 뷔르흐의 누이로 보여요. 스물두 살의 젊은 화가는 이렇게 새 도시에서 처남이 될지도 모를 사람과 나란히 처음 기록에 나타나요.
- 1653헤이그
1653년 5월, 헤이그의 법정에 소송 하나가 올라와요. 이 소송 문서에서 더 호흐는 옷감 상인 유스튀스 더 라 흐랑어의 "화가"이자 "하인"이라고 적혀 있어요. 하인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문서에 나오지 않아요. 상인의 장사를 거드는 일꾼이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먹고 자는 것을 대가로 그림을 그려 주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어요.
분명한 것은 이 상인이 더 호흐의 그림을 많이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1655년 더 라 흐랑어가 빚을 정리하며 그림들을 내놓았을 때, 그 목록에 더 호흐의 그림이 열 점 안팎 들어 있었어요.
- 1654델프트
1654년 봄, 더 호흐는 델프트에서 얀네여 판 데르 뷔르흐와 결혼해요. 혼인 기록에 신랑은 자기 주소를 로테르담이라고 적었어요. 신부는 판 데르 뷔르흐의 누이로 보이지만, 신부의 세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학자들은 조심스럽게 말해요.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났어요.
이듬해인 1655년 9월 20일, 더 호흐는 델프트 화가 조합에 이름을 올려요. 1656년과 1657년에도 회비를 낸 기록이 남아 있어요. 「방문」은 이 무렵 델프트에서 그린 그림이에요. 왼쪽 창가에서 붉은 웃옷의 여인이 은빛 주전자를 기울이고, 탁자 쪽에서는 두 남자와 한 여인이 바짝 붙어 있어요. 흰 두건을 쓴 여인은 옆의 남자를 보며 웃어요. 오른쪽 아래 바닥에는 검은 모자 하나가 놓여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방문 - 1660 무렵암스테르담
더 호흐 가족이 델프트를 떠나 암스테르담에 짐을 풀어요. 1660년 중반에서 1661년 4월 사이의 일이에요. 기록에 남은 첫 주소는 레휠리르스파트였어요. 레휠리르스 성문 밖, 옛 성벽 바깥에 있던 길로,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어요.
그런데 그림 속 방은 거꾸로 점점 넓고 화려해져요. 「우아한 실내의 여가」에서는 금빛 무늬 가죽이 벽을 덮고, 사람들이 파이프와 술잔을 들고 쉬어요. 「젊은 부부가 있는 실내」를 보면 오른쪽 열린 창으로 빛이 쏟아지고, 왼쪽 문 너머로 또 다른 방과 창이 이어져요. 바닥 체크무늬 위에서는 작은 개 한 마리가 서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우아한 실내의 여가 - 1684암스테르담
1684년 3월, 암스테르담의 매장 기록에 "돌하위스의 피터르 더 호흐"라는 이름이 적혀요. 돌하위스는 정신이 아픈 사람들을 가두어 돌보던 시설이에요. 오랫동안 사람들은 화가가 그곳에서 쉰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믿었어요.
2008년, 미술사학자 프란스 흐레이전하우트가 그 시설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았어요. 그곳에서 죽은 사람은 화가가 아니라 같은 이름을 쓴 그의 아들이었어요. 화가 자신이 언제 어디서 세상을 떠났는지는 지금도 몰라요.
그의 그림 가운데 세 점은 뉴욕 수집가들의 손을 거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모였어요. 「방문」은 1929년 해브마이어 부부의 소장품과 함께, 「우아한 실내의 여가」는 1975년 로버트 레만의 소장품과 함께 미술관에 들어왔어요. 이제 그 그림들의 열린 문과 창을 다시 보세요. 끝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가, 그림 속 방에 다음 방으로 가는 길을 열어 두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헨드릭 판 데르 뷔르흐델프트에서 더 호흐와 함께 유언장 증인으로 기록된 화가로, 그의 처남으로 보는 사람이에요.
- 얀네여 판 데르 뷔르흐1654년 델프트에서 결혼한 아내예요.
- 유스튀스 더 라 흐랑어더 호흐를 "화가이자 하인"으로 두고 그의 그림을 여러 점 가졌던 옷감 상인이에요.
- 야코프 오흐테르펠트하우브라컨의 기록에 따르면 베르헴 아래에서 함께 그림을 배운 로테르담 출신 화가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