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늙은 성 히에로니무스가 무릎을 꿇고 죽기 전 마지막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이에요.
- 산드로 보티첼리가 1490년대 초 피렌체에서 나무판에 템페라와 금으로 그렸어요.
- 세로 34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그림인데, 오두막 벽의 엮은 무늬부터 제의의 수놓은 띠까지 꼼꼼하게 들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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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를 확대해 보세요. 사제가 손가락 끝으로 하얀 성체를 집어 히에로니무스의 입에 넣어 주려 해요. 다른 손은 성체 아래에 작은 받침을 대고 있어요. 대머리에 긴 회색 수염을 한 노인은 두 손을 모으고 입을 벌렸어요. 뒤에서 갈색 옷의 수도자가 고개를 숙여 그 모습을 지켜봐요.
제단 위쪽을 보세요. 작은 십자가 뒤로 야자 잎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어요. 그 오른쪽 벽에는 긴 끈이 달린 붉은 모자가 걸려 있어요. 추기경의 모자예요. 히에로니무스를 그린 그림에는 이 붉은 모자가 그를 알아보는 표시로 자주 들어가요.
왼쪽의 소년을 확대해 보세요. 흰 옷에 초록 깃을 단 복사가 커다란 촛대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어요. 소매 끝과 어깨에는 파란 바탕에 붉은 무늬를 수놓은 천이 덧대져 있어요. 옆얼굴이 진지해요.
왼쪽 위 벽과 천장을 보세요. 짧은 선을 가로세로 엇갈려 그어서 바구니를 엮은 것 같은 무늬를 만들었어요. 돌로 지은 성당이 아니라 풀이나 갈대를 엮어 세운 소박한 오두막처럼 보여요. 창밖으로는 파란 하늘이 보여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490년대 초, 마흔 살을 훌쩍 넘긴 산드로 보티첼리는 피렌체에서 이름난 화가였어요. 젊은 시절에는 메디치 집안 사람들 곁에서 일했고, 1480년대 초에는 로마로 불려 가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가 돌아와 살던 피렌체의 공기가 이 무렵 크게 바뀌고 있었어요.
1492년 도시를 이끌던 로렌초 데 메디치가 세상을 떠났어요. 이 무렵 도미니코회 수도자 사보나롤라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어요. 그는 사치와 허영을 꾸짖고 회개를 외치는 설교로 시민들을 사로잡았어요.
이 작은 그림을 주문한 사람은 피렌체의 양모 상인 프란체스코 델 풀리에세였어요. 그는 사보나롤라를 따르는 사람이었어요. 학자들은 1502년 그가 남긴 문서에 적힌 그림을 이 그림으로 봐요.
보티첼리 자신도 그 바람 속에 있었어요. 16세기의 미술가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는 그가 사보나롤라를 열렬히 따랐다고 썼어요. 사보나롤라는 1498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처형되었어요. 이 그림은 4백 년 넘게 지나 미국 수집가 벤저민 올트먼의 손에 들어갔고, 1913년 그의 유증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이제 히에로니무스의 옆구리를 보세요. 뒤에 선 갈색 옷의 수도자가 손으로 노인의 흰 옷을 붙잡아 몸을 받쳐 주고 있어요. 마지막 성체를 받는 순간에도, 노인은 혼자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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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제단 오른쪽 벽에 걸린 붉은 추기경 모자와 끈을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보티첼리는 왜 학자 성인의 마지막 순간을 화려한 성당이 아니라 엮은 벽의 오두막에 두었을까요?
- 나라면히에로니무스는 홀로 죽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떠나요. 오늘 우리 사회에서 홀로 마지막을 맞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