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15세기 · 장 에(물랭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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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 붉은 벨벳 옷을 입은 열 살 남짓한 소녀가 창가 난간 앞에 서 있는 초상화예요. 소녀는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예요.
- 프랑스 물랭에서 일한 화가 장 에(물랭의 거장)가 1490년 무렵 참나무판에 유화로 그렸어요.
- 프랑스 왕비가 될 사람으로 길러지던 소녀의 얼굴을, 책 한 권 크기의 작은 판에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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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쓰개 가장자리를 확대해 보세요. 마름모 무늬를 금실로 수놓은 검은 띠 옆에 둥근 구슬이 한 줄로 박혀 있어요. 구슬마다 붉은빛과 금빛이 번갈아 돌아요. 그 뒤 갈색 천에는 작은 금빛 점이 흩뿌려져 있어요.
목걸이 끝의 장식을 보세요. 둥글게 말린 금 장식 아래 붉은 보석이 매달려 있어요. 보석 표면에 흰 점 하나를 찍어 반짝임을 냈어요. 그 바로 위 피부에는 오래된 그림에 생기는 가는 금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어요.
아래쪽 두 손을 확대해 보세요. 투명한 구슬 줄을 손가락으로 쥐고 있고, 그 끝에 금실로 엮은 둥근 구슬이 달려 있어요. 기도할 때 쓰는 묵주처럼 보여요. 손이 난간 위에 놓여 있어서, 소녀가 그림 틀 바로 앞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오른쪽 창밖 풍경을 보세요. 푸른 지붕을 얹은 둥근 탑과 성이 물가에 서 있고, 성벽이 물에 비쳐요. 멀리 언덕 너머에는 또 다른 마을의 탑들이 희미하게 보여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490년 무렵, 마르가레테는 열 살이었어요. 그녀는 1480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과 부르고뉴의 마리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1482년 어머니가 말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난 뒤, 세 살배기 마르가레테는 프랑스 왕세자 샤를의 신붓감으로 프랑스 궁정에 보내졌어요. 두 나라가 맺은 평화 조약의 약속이었어요.
프랑스에서 그녀를 길러 낸 사람은 샤를의 누나 안 드 프랑스였어요. 안은 어린 동생 대신 나라 일을 돌보며, 남편 부르봉 공작 피에르 2세와 함께 물랭의 궁정을 꾸렸어요. 장 에는 바로 이 부부를 위해 일하던 화가예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초상화가 1490년에서 1491년 사이, 마르가레테가 물랭의 부르봉 궁정을 찾았을 무렵 그려졌다고 봐요.
그림에는 그 약속이 숨어 있어요. 옷깃의 금장식 사이로 흰 글자와 붉은 글자가 번갈아 보이죠. 미술관은 이것을 샤를과 마르가레테의 머리글자 C와 M으로 읽어요.
하지만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1491년 말 샤를 8세는 브르타뉴의 안과 결혼했어요. 마르가레테는 왕비가 되지 못한 채 1493년에야 아버지에게 돌아갔어요. 그 뒤 두 번 결혼했지만, 두 남편 모두 몇 해 안에 세상을 떠났어요.
1507년 그녀는 네덜란드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이 되어 메헬렌에 궁정을 열었어요. 그곳에 책과 그림을 많이 모았는데,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도 그녀의 소장품이었어요. 이 작은 초상화는 훗날 로버트 레만의 소장품과 함께 197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왔어요.
이제 소녀의 손과 얼굴을 다시 보세요. 열 살 아이가 묵주를 쥔 채 웃지 않고 먼 곳을 바라봐요. 왕비로 살 줄 알았던 나라는 끝내 그녀의 나라가 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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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소녀 머리 뒤 왼쪽 창밖, 나무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화가는 왜 이 어린 소녀를 웃음기 없는 차분한 얼굴로, 비단과 보석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그렸을까요?
- 나라면마르가레테는 세 살에 정해진 약혼 때문에 고향을 떠나 자랐어요. 어른들이 정한 길을 아이가 따라야 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