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이집트로 피신하던 성가족이 숲 가장자리에서 쉬는 동안, 바위에 앉은 성모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에요.
- 브뤼허에서 일한 화가 헤라르트 다비트가 1512~15년 무렵 나무판에 유화로 그렸어요.
- 높이 53센티미터의 작은 판 안에 성모의 얼굴부터 먼 마을의 성당 탑, 숲속 나그네까지 세밀하게 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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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를 확대해 보세요. 성모가 손가락으로 가슴을 받쳐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어요. 아기는 젖을 먹으면서 눈은 다른 쪽을 바라봐요. 아기가 입은 얇은 옷은 거의 투명해서, 그 아래 살결이 비쳐 보여요.
오른쪽 숲길 안쪽을 보세요. 파란 옷의 여인이 아기를 안고 당나귀를 탔고, 짐을 멘 남자가 함께 걸어가요. 앞쪽에서 쉬고 있는 바로 그 가족이에요. 한 그림 안에 쉬는 순간과 다시 길을 가는 순간을 함께 넣었어요.
그림 오른쪽, 성모 곁의 바위 위를 확대해 보세요. 잎이 달린 가지에 둥근 사과 몇 알이 매달려 있어요. 기독교 그림에서 사과는 아담과 하와의 죄를 떠올리게 하는 열매예요. 그 곁에 아기 예수를 두어, 그 죄를 씻어 줄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 줘요.
왼쪽 멀리 마을을 확대해 보세요. 높은 사각 탑과 뾰족한 지붕의 성당, 성벽과 둥근 탑이 푸른 언덕 앞에 서 있어요. 이야기 속 장소는 이집트로 가는 길이지만, 풍경은 화가가 살던 북유럽 마을을 닮았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이 그림을 그릴 무렵, 헤라르트 다비트는 쉰 살이 넘은 화가였어요. 지금의 네덜란드 땅 아우더바터에서 태어난 그는 1484년 브뤼허 화가 조합에 들어가 그 도시에 자리를 잡았어요. 1494년 한스 멤링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브뤼허에서 손꼽히는 화가가 되었어요.
그의 삶은 단단했어요. 1496년에는 금세공인 조합장의 딸 코르넬리아 크노프와 결혼했어요. 1498년에는 브뤼허 시청에 걸 큰 그림 「캄비세스의 재판」을 완성했어요. 도시가 정의의 본보기로 삼을 그림을 맡길 만큼 믿음을 받는 화가였던 거예요.
그런데 그 사이 세상이 달라지고 있었어요. 북쪽의 안트베르펜이 큰 무역 도시로 떠오르면서, 상인과 손님들이 브뤼허에서 그리로 옮겨 갔어요. 다비트도 1515년 안트베르펜 화가 조합에 이름을 올렸어요.
같은 장면이 여러 판본으로 남아 있어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다비트가 정해진 주문자 없이 시장에 내놓을 그림의 본을 공들여 짰다고 봐요. 쉬는 성모와 숲, 먼 마을을 조금씩 바꿔 가며 다시 쓸 수 있는 본이었다는 거예요.
다비트는 1523년 브뤼허에서 세상을 떠나 성모 성당에 묻혔어요. 그 뒤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혔다가, 19세기에 영국인 연구자 제임스 윌이 브뤼허 문서고에서 기록을 찾아내면서 다시 알려졌어요. 이 그림은 1949년 줄스 베이치 소장품과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이제 성모의 파란 망토를 다시 보세요. 바위에서 땅까지 넓게 흘러내린 주름이 하나하나 차분하게 접혀 있어요. 오래 잊혔던 브뤼허 화가의 꼼꼼한 손길이 그 주름마다 남아 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하늘과 나무 위쪽에서 날아가는 새를 몇 마리나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화가는 왜 멀리 길을 가는 가족을 그림 속에 한 번 더 그려 넣었을까요?
- 나라면이 가족은 위협을 피해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는 길이에요. 오늘 피란을 떠나는 가족들은 길 위에서 어떤 쉼이 가장 필요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