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18세기 ·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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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자와 함께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Two Pupils, Marie Gabrielle Capet (1761–1818) and Marie Marguerite Carraux de Rosemond (1765–1788)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1785년캔버스에 유채210.8 × 151.1 cm
한눈에
- 은빛 비단 드레스를 입은 화가가 이젤 앞에 앉아 팔레트를 들고, 두 제자가 그 뒤에 바짝 붙어 선 자화상이에요.
- 파리의 화가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가 1785년에 그렸어요. 두 제자는 마리 가브리엘 카페와 마리 마르그리트 카로 드 로즈몽이에요.
- 높이가 2미터를 넘는 큰 화면에, 여성 화가가 여성 제자들을 가르치는 화실을 당당하게 담았어요.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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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얼굴을 확대해 보세요. 깃털과 하늘색 리본을 단 밀짚모자를 쓰고, 붓을 든 채 우리 쪽을 바라봐요.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 있어요. 지금 막 그림을 그리다 고개를 든 것처럼 보여요.
뒤에 선 두 제자를 보세요. 머리띠를 한 제자는 우리를 똑바로 보고, 얇은 망사 모자를 쓴 제자는 스승의 캔버스를 들여다보고 있어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팔로 감싸 안고 있어요.
팔레트를 든 손을 확대해 보세요. 팔레트 아래로 반짝이는 하늘색 비단 소매와 레이스 장식이 흘러내려요.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막대는 붓을 쥔 손을 받쳐 주는 받침대예요. 비단의 빛나는 주름 하나하나가 화가의 솜씨를 보여 줘요.
왼쪽 뒤 어둠 속을 확대해 보세요. 나이 든 남자의 흉상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옆에는 천을 두른 조각상이 서 있어요. 화실에는 이렇게 보고 그릴 조각들이 있었어요.
왼쪽 이젤의 아래쪽 나무판을 확대해 보세요. 나무 위에 흘림체로 쓴 서명과 1785 라는 연도가 보여요. 그림을 그린 사람과 해를 화실 도구 위에 남겼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785년, 서른여섯 살의 라비유기아르는 이 커다란 자화상을 파리 살롱 전시회에 걸었어요. 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그림은 큰 호평을 받았어요.
두 해 전인 1783년, 그녀는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과 같은 날 프랑스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어요. 두 사람은 그 뒤로 늘 비교되는 맞수였어요. 그런데 두 사람이 들어간 직후, 아카데미는 여성 회원을 네 명까지만 두기로 정했어요.
그래서 이 그림을 여성 화가들을 위한 당당한 주장으로 읽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어요. 그녀는 자기 화실에서 젊은 여성들을 가르쳤고, 뒤에 선 두 사람이 그 제자예요.
1787년 그녀는 루이 16세의 고모들을 그리는 화가라는 칭호를 받았어요. 하지만 혁명이 모든 것을 바꿨어요. 1793년, 왕의 동생이 주문한 거대한 단체 초상화를 넘겨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왔어요. 왕실을 높인 그림이라는 이유였어요.
로즈몽은 1788년,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카페는 스승 곁에 끝까지 남아 함께 살았고, 1808년에는 스승의 화실을 그린 그림을 남겼어요. 라비유기아르는 1800년 옛 스승인 화가 프랑수아앙드레 뱅상과 결혼했고, 1803년에 숨졌어요. 이 그림은 1953년 줄리아 A. 버윈드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어요.
다시 스승의 어깨 뒤에 바짝 붙은 두 얼굴을 보세요. 한 사람은 세 해 뒤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스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을 지켰어요.
이 그림을 그린 사람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
Adélaïde Labille-Guiard · 1749–1803
이 그림을 그렸을 때 36살 무렵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의 그림 모두 보기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오른쪽 아래, 붉은 의자 위에 놓인 물건들을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라비유기아르는 왜 그리는 중인 캔버스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을 우리 쪽으로 돌려놓았을까요?
- 나라면그때 아카데미는 여성 회원 수를 넷으로 막아 두었어요. 오늘날에도 어떤 일터나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인원 제한이 남아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