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어두운 숲 가장자리에서 시골 소녀가 어린 동생을 안고 서 있고, 그 옆에 붉은 머리 소년이 나뭇가지를 안고 앉아 있는 그림이에요.
- 영국 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1787년에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어요.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이에요.
- 높이가 1.5미터 가까운 큰 캔버스에, 땔감을 줍는 가난한 아이들을 초상화처럼 크게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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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위 아기를 확대해 보세요. 금빛 머리의 아기가 소녀 품에 안긴 채 한 손을 쭉 뻗고 있어요. 하얀 소매와 붉은 옷은 몇 번의 붓질로 툭툭 그려졌어요.
소녀의 얼굴을 보세요. 검은 머리가 이마를 덮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우리를 똑바로 바라봐요. 동생은 딴 데를 보는데 소녀만 눈을 맞춰요. 입술은 다물었고, 눈썹은 조금 처져 있어요.
왼쪽 아래 소년을 확대해 보세요. 붉은 머리에 볼이 발그레한 소년이 거무스름한 묶음을 끌어안고 있어요. 제목의 나무 줍는 아이들처럼, 주워 모은 나뭇가지 묶음으로 보여요. 소년은 고개를 돌려 아기가 가리키는 쪽을 보고 있어요.
맨 아래 가운데, 땅 위에 놓인 맨발 하나를 찾아보세요. 어둠 속에 붉은 갈색으로 희미하게 떠올라 있어요. 소녀 품의 아기도 맨발을 대롱대롱 늘어뜨리고 있어요. 아이들은 신발 없이 숲에 나와 있어요.
왼쪽 위 나무를 보세요. 잎이 떨어진 가는 가지가 하늘로 꺾여 올라가고, 아래쪽 잎은 바람에 휩쓸린 듯 한쪽으로 쏠려 있어요. 잎마다 주황과 갈색 붓질이 빠르게 지나갔어요. 하늘에는 물감이 마르며 생긴 가는 금이 퍼져 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787년, 예순 살의 게인즈버러는 런던 팰맬 거리의 큰 집 숌버그 하우스에서 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귀족과 부자들의 초상화로 이름을 날린 화가였지만, 말년의 그는 시골의 가난한 아이들을 크게 그린 그림을 여럿 남겼어요. 이런 그림을 팬시 픽처라고 불러요.
이 그림들에 끌린 사람 중에는 맞수도 있었어요. 왕립 아카데미의 회장 조슈아 레이놀즈는 게인즈버러의 팬시 픽처 「돼지와 소녀」를 사들였어요. 두 사람은 오랫동안 런던 화단을 나눠 가진 경쟁자였어요.
게인즈버러는 1768년 왕립 아카데미가 생길 때 창립 회원이었어요. 그런데 1784년, 자기 그림을 거는 높이를 두고 아카데미와 다툰 뒤로는 그곳에 그림을 내지 않았어요. 대신 숌버그 하우스에서 손님들에게 직접 그림을 보여 주었어요.
이 그림을 마친 이듬해 봄, 게인즈버러는 목에 생긴 암으로 병을 얻었어요. 그는 레이놀즈에게 편지를 보내 만나기를 청했고, 레이놀즈는 그를 찾아왔어요. 게인즈버러는 1788년 8월 세상을 떠났고, 그해 12월 레이놀즈는 아카데미 강연에서 그를 기리는 이야기를 했어요.
미술관 기록에서 이 그림의 첫 주인은 포체스터 경, 뒷날 카너번 백작이 된 헨리 허버트예요. 그림은 백 년 넘게 그 집안에 남았고, 1881년에는 왕립 아카데미 겨울 전시에 나무 줍는 아이들이라는 이름으로 걸렸어요. 이제 소녀의 눈을 다시 보세요. 화가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 그린 그 눈이, 지금도 그림 밖의 우리를 똑바로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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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아기가 쭉 뻗은 손은 어느 쪽을 가리키고, 소년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 왜일까게인즈버러는 왜 땔감을 줍는 아이들을 귀족 초상화만 한 큰 캔버스에 그렸을까요?
- 나라면그림 속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땔감을 모으고 동생을 돌봐요. 오늘날에도 집안일과 돌봄을 떠맡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