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높이 부풀린 머리에 흰 레이스 모자를 얹은 영국 왕비 샬럿을 가슴께까지, 어두운 타원 틀 안에 그린 초상이에요.
- 영국 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1782년 윈저성에서 그린 왕비 초상을 직접 다시 그린 그림이라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설명해요.
- 가까이 보면 붓 자국이 흩어져 있다가, 한 걸음 물러서면 레이스와 진주, 비단으로 모이는 게인즈버러의 붓질을 보여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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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얼굴부터 보세요. 회청색 눈동자가 정면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 보아 왼쪽으로 살짝 비켜 가 있어요. 뺨에는 엷은 분홍을, 입술에는 선명한 붉은색을 올렸어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어서 무언가를 들은 직후처럼 보여요.
머리 위 모자를 확대해 보세요. 레이스 한 올 한 올을 그리지 않았어요. 갈색, 회색, 흰색 물감을 빙글빙글 휘감듯 쓸어 놓았을 뿐이에요. 가까이서는 연기 같은 붓 자국인데, 떨어져서 보면 하늘하늘한 천과 분 바른 머리카락이 돼요.
목을 감은 목걸이를 보세요. 흰 점과 붉은 점이 몇 줄로 촘촘히 찍혀 있어요. 진주 알을 하나하나 둥글게 그리지 않고, 점을 찍어 반짝임만 남겼어요.
가슴 한가운데, 아래로 내려온 줄 끝을 확대해 보세요. 작은 장신구가 하나 매달려 있어요. 흰 물감 몇 방울과 갈색 점 몇 개뿐인데도 빛을 받는 보석처럼 보여요.
화면 오른쪽, 왕비의 왼쪽 어깨에 걸친 검은 레이스를 보세요. 굵은 붓으로 구불구불한 검은 선을 휘갈겨 레이스 가장자리를 만들었어요. 그 뒤로 비치는 갈색 바탕이 얇은 천이 겹친 느낌을 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782년 9월, 게인즈버러는 쉰다섯 살이었어요. 그는 런던 펠멜 거리의 큰 집에 살며 초상화로 이름난 화가였는데, 그해 가을 윈저성에 불려 갔어요. 서른여덟 살의 샬럿 왕비와 조지 3세, 그리고 그들의 아이 열세 명을 한 사람씩 타원 틀 안에 그리는 일이었어요. 모두 열다섯 점이었고, 이 연작은 왕비가 주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영국 왕실 소장품 기록은 설명해요.
그 가을의 윈저에는 슬픔도 있었어요. 막내 왕자 앨프리드가 그해 8월, 두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런데 연작에는 앨프리드의 초상도 들어 있어요. 왕실 기록은 이 초상이 아이가 떠난 뒤 기억에 기대어 그려졌다고 전해요.
이듬해 봄, 열다섯 점은 왕립 아카데미 전시에 나갔어요. 게인즈버러는 1783년 4월 편지로 그림을 다섯 점씩 세 줄로, 눈높이에 맞춰 걸어 달라고 꼼꼼히 부탁했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부탁이 지켜지지 않은 일이 그가 아카데미 전시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해요. 전시가 끝난 뒤 그림들은 버킹엄 하우스의 왕비 방에 걸렸어요.
이 그림은 그때 그린 왕비 초상을 게인즈버러가 다시 한 점 그린 것이에요. 뒷날 미국의 은행가 줄스 베이치가 모은 그림들 속에 들어갔고, 1949년 그의 소장품과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다시 왕비의 눈을 보세요. 아이들 초상과 나란히 걸렸던 왕비가 잠깐 옆을 돌아본 듯한 그 시선을, 게인즈버러는 몇 번의 엷은 붓질로 남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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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왕비의 목걸이에서 흰 점과 붉은 점은 각각 몇 줄인지 세어 볼 수 있나요?
- 왜일까게인즈버러는 왜 레이스와 보석을 꼼꼼히 그리지 않고 붓 자국으로만 남겼을까요?
- 나라면게인즈버러는 그림을 어떻게 걸지까지 지키려다 전시에서 물러났어요. 내가 만든 것이 남의 손에서 다르게 보여질 때, 어디까지 내 뜻을 고집해도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