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19세기 ·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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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치넬라의 장례
The Burial of Punchinello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1800년 무렵Pen and brown ink, brown and yellow wash, over black chalk.35.3 × 47.3 cm
한눈에
- 높은 고깔모자를 쓴 흰 옷의 광대 풀치넬라들이 동료 풀치넬라를 아치 아래 무덤 구덩이에 내려놓는 장면이에요.
-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가 1800년 무렵, 일흔을 넘겨 펜과 갈색·노란 물감으로 그렸어요.
- 장례식인데 우는 사람도 밧줄을 잡은 사람도 모두 같은 광대 옷차림이라, 슬픈지 우스운지 한참 들여다보게 돼요.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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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에 모여 선 풀치넬라들을 확대해 보세요. 모두 끝이 잘린 고깔모자를 쓰고, 얼굴에 매부리코 검은 가면을 썼어요. 몇은 손으로 눈가를 누르고, 몇은 천으로 얼굴을 감싸 울고 있어요. 가면 쓴 광대가 운다는 게 묘하게 마음에 걸려요.
가운데 아래, 구덩이로 내려가는 몸을 보세요. 불룩한 흰 옷에 단추가 콕콕 찍혀 있어요. 둘레의 풀치넬라들이 밧줄을 잡고 허리를 굽혀 무게를 버텨요. 짙은 갈색 물감으로 구덩이 안쪽의 어둠을 칠했어요.
오른쪽에 떨어져 선 두 사람을 확대해 보세요. 줄무늬 망토를 걸친 수염 난 노인과 젊은이 하나가 장례를 지켜봐요. 장면 밖에서 우리처럼 구경하는 사람들 같아요.
오른쪽 아래, 들어 올린 묘석 옆 바닥을 보세요. 해골 하나가 굴러 있어요. 붓 몇 번으로 눈구멍과 이빨만 짚었는데도 금세 알아볼 수 있어요. 우스꽝스러운 광대 장례 한쪽에,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을 슬쩍 놓아두었어요.
왼쪽 아래 구석을 확대해 보세요. 갈색 잉크로 Dom.o Tiepolo f 라고 적혀 있어요. 도메니코 티에폴로가 그렸다는 서명이에요. 그 위 바닥에는 장대와 밧줄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800년 무렵 도메니코 티에폴로는 일흔을 넘긴 노화가였어요. 젊은 날 그는 이름난 화가였던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곁에서 일했어요. 1750년대 초에는 독일 뷔르츠부르크의 주교 궁전에서, 1762년부터는 마드리드 왕궁에서 아버지와 함께 천장을 그렸어요. 1770년 아버지가 마드리드에서 세상을 떠나자, 그는 베네치아로 돌아왔어요.
1797년, 천 년 넘게 이어진 베네치아 공화국이 나폴레옹 앞에 무너졌어요. 도메니코는 말년을 베네치아 가까운 지아니고 마을의 집안 별장에서 많이 보냈어요. 그는 이 별장 방들의 벽에 프레스코를 그렸는데, 그 가운데에는 풀치넬라들이 주인공인 방도 있어요. 이 벽화들은 20세기 초 벽에서 떼어져, 지금 베네치아의 카레초니코 박물관에 있어요.
종이 위에서도 그는 풀치넬라를 따라갔어요. 이 광대가 태어나 일하고, 결혼하고, 병들어 죽기까지를 104장의 소묘로 그린 연작이에요. 첫 장에는 아이들을 위한 즐거움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제목을 적었어요. 풀치넬라는 나폴리에서 온 즉흥 가면극의 광대예요.
도메니코는 1804년 베네치아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연작은 한데 묶여 전해지다가 1920년 런던 경매를 거치며 여러 사람에게 흩어졌어요. 1980년 뉴욕의 프릭 컬렉션에는 흩어진 장들 가운데 50장 남짓이 다시 모여 걸렸어요. 이 장은 은행가 로버트 레만의 소장품이 되었다가 197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왔어요.
다시 밧줄에 매달려 구덩이로 내려가는 흰 몸을 보세요. 나라가 사라진 뒤 일흔 넘은 화가가 백 장 넘게 따라간 광대의 삶이, 바로 여기서 땅에 묻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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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이 그림에 고깔모자를 쓴 풀치넬라는 모두 몇 명인가요?
- 왜일까도메니코는 왜 장례 장면에 해골과 우는 광대를 함께 그려 넣었을까요?
- 나라면도메니코는 나라가 무너진 뒤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삶과 죽음을 그렸어요. 슬픈 일을 웃음으로 이야기하는 건 슬픔을 가볍게 만드는 일일까요, 견디게 하는 일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