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17세기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레오그림 오른쪽 아래 ‘돋보기’를 켜고 천천히 움직여 보세요.
‘크게 보기’를 누르면 화면 가득 커져요.그림을 누르면 화면 가득 커져요.
두 손가락으로 벌려 더 가까이 보세요.
한눈에
- 캄캄한 어둠 앞,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둔 예수 한 사람만 그렸어요.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이 1627년, 서른이 되기 전에 그렸어요.
- 높이 2.9미터의 큰 화폭에 배경을 모두 지워, 그림이 아니라 조각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어요.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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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위 번호를 누르면 그 해설로, 확대 그림을 누르면 그림 전체에서 그 자리로 가요.
맨 위의 나무 팻말부터 확대해 보세요. 세 줄의 글씨가 서로 다른 문자로 적혀 있어요. 위는 히브리어, 가운데는 그리스어, 아래는 라틴어로, 모두 나자렛 예수, 유다인의 왕이라는 뜻이에요. 팻말 아래쪽에는 그것을 박은 못 두 개가 보여요.
한쪽 어깨로 고개를 떨군 얼굴을 보세요. 눈은 감겼고, 머리카락이 뺨 옆으로 흘러내렸어요. 얼굴에 피나 일그러진 표정이 없어서 깊이 잠든 사람처럼 보여요. 어둠 속에서 이마와 코끝, 수염 끝이 희미하게 빛을 받아요.
허리에 두른 흰 천을 보세요. 천이 겹치고 접힌 곳마다 밝은 회색과 어두운 회색이 촘촘히 바뀌어요. 한쪽 자락은 엉덩이 옆으로 길게 늘어졌어요. 손으로 만지면 바스락 소리가 날 것 같아요.
아래로 내려가 발을 보세요. 두 발을 겹치지 않고 하나씩 따로 못 박았어요. 못 자리에서 가는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발 아래에는 나무 받침이 있어요. 발가락 하나하나에 빛과 그늘이 있어서 손에 잡힐 듯해요.
맨 아래 십자가 기둥에 구겨진 하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어요. 확대하면 손글씨가 보여요. 이 종이는 수르바란이 자기 이름을 적어 둔 서명 자리로 알려져 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626년, 스물일곱 살의 수르바란은 큰 도시 세비야가 아니라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의 작은 도시 예레나에 살고 있었어요. 그런 그에게 세비야의 도미니코회 수도원 산 파블로 엘 레알이 큰일을 맡겨요. 여덟 달 안에 그림 스물한 점을 그려 달라는 계약이었어요.
「십자가 처형」은 그 연작 가운데 하나로, 이듬해인 1627년에 완성됐어요. 그림은 수도원 안의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예배실에 걸렸고, 사람들은 쇠창살 너머로 이 그림을 봤어요. 백 년쯤 뒤 스페인 화가들의 전기를 쓴 안토니오 팔로미노는,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조각으로 믿는다고 적었어요.
세비야는 이 젊은 화가를 곁에 두고 싶어 했어요. 1629년 세비야 시의회는 수르바란에게 아예 세비야로 옮겨 와 살라고 청했어요. 그는 그 뒤 세비야에서 여러 수도원의 큰 연작을 잇달아 맡는 화가가 됐어요.
그림이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1810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세비야를 차지했을 때, 점령 정부가 거둬 간 그림 목록에 이 그림도 올라 있어요. 그 뒤 그림은 오랫동안 사람들 눈에서 사라졌다가 1950년대 초 스위스 바젤의 개인 소장품으로 다시 나타났어요. 1954년 시카고 미술관이 사들였고, 이듬해 시카고 신문은 한 세기 동안 사라졌던 그림이 왔다고 1면에 전했어요.
이제 다시 기둥 맨 아래의 구겨진 종이를 보세요. 수도원의 어둠과 전쟁과 낯선 집들을 거쳐 오는 동안에도, 예레나에서 온 젊은 화가가 그려 붙인 작은 종이는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어요.
같은 화가의 다른 그림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그림 속 못은 모두 몇 개나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수르바란은 왜 십자가 둘레의 사람들과 하늘과 언덕을 모두 지우고 어둠만 남겼을까요?
- 나라면어두운 방 쇠창살 너머로 이 그림을 보던 사람들처럼, 우리가 휴대폰 화면 너머로 누군가의 고통을 볼 때 그것을 진짜로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