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남은 그림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대신 이 화가의 다른 그림들

화가 · 17세기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Francisco de Zurbarán · 1598–1664

스페인 서쪽 시골 마을에서 나와 세비야의 수도원들을 하얀 수도복과 깊은 어둠의 그림으로 채우고, 마지막은 마드리드에서 맞은 화가예요.

66살았던 해
17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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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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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614세비야

    열다섯 살 소년이 큰 항구 도시 세비야에 도착해요. 아버지 루이스는 고향 푸엔테 데 칸토스에서 잡화를 파는 상인이었어요. 그는 아들을 화가 페드로 디아스 데 비야누에바에게 3년 동안 맡겨 그림을 배우게 했어요. 스승은 오늘날 남은 그림이 거의 없어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예요.

    그 무렵 세비야에는 한 살 어린 소년이 또 그림을 배우고 있었어요. 훗날 궁정 화가가 되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예요. 두 사람의 인연은 마흔 해 넘게 이어져요.

  2. 1617예레나

    수업을 마친 수르바란은 세비야에 남지 않고 고향 가까운 작은 도시 예레나로 가요. 1617년 그는 이곳에서 마리아 파에트와 결혼해요. 신부는 그보다 아홉 살 많았어요. 부부 사이에 아이 셋이 태어났고, 1620년에 태어난 아들 후안은 자라서 아버지처럼 화가가 돼요.

    행복은 길지 않았어요. 마리아는 셋째 아이를 낳은 뒤 세상을 떠났어요. 혼자 아이 셋을 키우게 된 수르바란은 1625년 부유한 과부 베아트리스 데 모랄레스와 다시 결혼해요.

  3. 1626세비야

    1626년 1월, 예레나에 살던 스물일곱 살 화가가 세비야에서 계약서에 서명해요. 상대는 도미니코회 수도원 산 파블로 엘 레알이에요. 약속은 여덟 달 안에 그림 스물한 점이었어요. 작은 도시에서 온 젊은이에게 큰 도시의 큰일이 맡겨진 거예요.

    이듬해 완성된 「십자가 처형」을 보세요. 언덕도 하늘도 사람도 없이, 새카만 바탕 앞에 몸 하나만 빛을 받아요. 허리에 두른 흰 천은 접힌 자리마다 밝고 어두운 회색이 바뀌어요. 두 발은 겹치지 않고 하나씩 따로 못 박혔어요.

    이때 그린 그림십자가 처형
  4. 1630세비야

    1629년, 세비야 시의회가 수르바란에게 아예 이 도시로 옮겨 와 살라고 청해요. 그런데 이듬해 5월, 세비야 화가들이 들고일어나요. 이 도시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화가 조합의 시험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화가들을 대표해 이 요구를 낸 사람은 알론소 카노였어요.

    수르바란은 시험을 거절해요. 시의회가 스스로 이 도시에 불러들인 화가라는 점을 내세워 시의회에 호소했어요. 그는 세비야에 남아 수도원 일을 이어 갔어요. 몇 해 뒤 그린 「어린 성모」에서는 바느질하던 아이가 손을 모으고 위를 올려다봐요. 무릎 위에는 수놓다 만 하얀 천이 펼쳐져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어린 성모
  5. 1634마드리드

    1634년, 수르바란이 세비야를 떠나 왕이 있는 마드리드로 불려 가요. 펠리페 4세가 새로 짓는 부엔 레티로 궁전에 '왕국의 방'이라는 큰 홀이 있었어요. 그곳에 걸 그림으로 그는 헤라클레스의 열 가지 이야기와, 영국군을 물리친 카디스 방어 장면을 맡았어요.

    수도사와 성인을 그리던 화가가 이번에는 근육질 영웅과 전쟁 장면을 그린 거예요. 일을 마친 그는 다시 세비야로 돌아가요. 그 그림들은 지금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어요.

  6. 1647세비야

    1647년, 바다 건너 페루 리마의 라 엔카르나시온 수녀원이 세비야의 수르바란 공방에 큰 주문을 넣어요. 사람 크기의 성녀 그림 연작이었어요. 세비야는 아메리카로 가는 배가 떠나는 항구였어요. 수르바란의 공방은 제자들과 함께 그린 그림을 여러 해에 걸쳐 리마와 부에노스아이레스 같은 곳으로 보냈어요.

  7. 1649세비야

    1649년, 세비야에 흑사병이 덮쳐요. 도시 사람의 큰 몫이 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어요. 그 가운데 수르바란의 아들 후안도 있었어요.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워 정물화로 이름을 얻기 시작한 스물아홉 살의 화가였어요.

    그 사이 수르바란의 집안에도 많은 일이 있었어요. 두 번째 아내 베아트리스는 1639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는 1644년 레오노르 데 토르데라와 세 번째로 결혼했어요. 그리고 1649년, 첫 결혼에서 얻은 아들을 잃은 거예요.

  8. 1658마드리드

    1658년 12월 23일, 예순 살의 수르바란이 마드리드에서 증인으로 나서요. 오랜 친구 벨라스케스가 귀족 기사단인 산티아고 기사단에 들어가려고 집안 심사를 받고 있었어요. 수르바란은 벨라스케스를 안 지 사십 년쯤 됐다고 증언했어요. 세비야에서 그림을 배우던 두 소년이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난 자리였어요.

    그는 세비야로 돌아가지 않고 마드리드에 남았어요. 그리고 1664년 8월 27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세비야 수도원들에 남긴 그림은 그 뒤 전쟁과 수도원 폐쇄를 거치며 흩어졌어요. 오늘 「십자가 처형」은 시카고 미술관에, 「어린 성모」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페드로 디아스 데 비야누에바1614년부터 세비야에서 수르바란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이에요.
  • 디에고 벨라스케스세비야에서 함께 젊은 시절을 보낸 친구로, 1658년 수르바란이 그의 기사단 심사에서 증언했어요.
  • 알론소 카노1630년 세비야 화가들을 대표해 수르바란에게 조합 시험을 요구한 화가예요.
  • 후안 데 수르바란첫 아내 마리아에게서 난 아들로, 화가가 됐지만 1649년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 베아트리스 데 모랄레스1625년에 결혼한 두 번째 아내로, 1639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 레오노르 데 토르데라1644년에 결혼한 세 번째 아내예요.

작품

평예재에 걸린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그림